정부가 청구인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면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게 정보공개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언론의 권력 감시를 무력화하려는 개악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자가 민감한 정보를 청구하면 상습적, 악의적 민원으로 보고 처리를 종결시켜 버리는 등 제도를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국회시민정치포럼은 11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알권리가 위험하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정부가 발의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이 시민사회와 언론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개정안은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정보공개법 전문가인 하승수 변호사는 개정안에는 그동안 정부가 언론과 분쟁에서 익히 주장해 온 내용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 뉴스타파와 1심 소송에서 패소한 뒤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면서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 등을 공개하면 “과도한 행정적 노력이 필요하고, 기자라는 신분 등에 비춰볼 때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청구인에게 담당자를 “괴롭힐 목적”이 있거나 “방대한 양을 청구”하면 부당하거나 과도한 요구로 보고 “종결”할 수 있게 했다. 공개인지 비공개인지 가부간 결론 내지 않고 아예 처리 절차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개정안은 어떤 청구가 괴롭힘이고 어느 정도가 방대한 양인지 기준은 대통령이 정할 수 있게 위임하기도 했다.
대구·경북지역 독립언론인 뉴스민의 이상원 기자는 지난해 대구시 정보공개심의회 의결서에서 자신에 대해 ‘악성민원’, ‘공무원을 괴롭힐 목적’이 언급된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이 기자는 대구시에 관사 관련 정보를 청구했다가 비공개 처분을 받았다. 비공개 이유는 '사생활'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가 악성 민원인이라는 이유가 이면에 있었다.
이 기자는 “대구시에 한 달 5건 정도씩 청구했는데 과연 ‘다량’으로 볼 수 있느냐”며 “악의적이라는 기준이 결국 권력을 불편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공공기관이 시민을 블랙리스트로 만드는 것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결 처분이 새로 생기면 불복절차는 한 단계가 더 늘어난다는 점도 문제다. 하 변호사는 “비공개 취소소송이 대법원까지 가면 3년 정도 걸린다”며 “종결 처분부터 먼저 취소시키고 나서 비공개 결정 이후 여기에 다시 취소소송을 하면 6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짚었다. “공개 결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기관장들도 임기가 두 번 정도 지난 뒤여서 실질적인 권력 감시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이 일선 공무원들이 겪는 악성 청구를 막겠다는 취지라고 주장한다. 시민단체들은 주요 권력기관과 역시 중앙행정기관의 하나인 대통령실이 권력 감시를 막는 데 개정 조항을 악용할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청구권을 남용하는 일부 때문에 전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은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김유승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정보은폐 기조가 이번 개정안의 기저에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규모 사적 채용 의혹으로 정권 출범 2개월 만에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정보공개 청구했지만 대통령실은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까지 법원 판결에 불복하며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며 “정보접근권 차단은 우리 사회 투명성과 민주주의 가치 훼손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