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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순안공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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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평양축전 참관기>
6월14일 오전 9시54분 '6.15 다섯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대표단을 태운 대한항공 보잉 747-400 여객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기자로서는 첫 평양 방문이었다.
물론 북쪽 사람들은 이전에도 여러 번 접해봤다. 북.중 국경 지대에서 탈북자들을 취재해봤고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복무원들과 어울려도 봤다. 1993년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가 어학연수를 했던 학교에 마침 북한 유학생 50여명이 있어 술잔을 기울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북한 밖에서 이뤄졌다. 직접 북쪽, 그것도 수도인 평양을 밟아본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여기에 이번 행사 참여 자체가 약간 과장하면 '천신만고' 끝에 이뤄진 것이어서 기쁨은 더 컸다.
처음 인터넷과 주.월간지에 할당된 풀 기자단 숫자는 4명에 불과했다. 어렵게 제비뽑기에서 당첨됐다. 남쪽 취재단은 온․오프라인을 합쳐 모두 풀 기자단으로 구성했다. 그래봐야 펜 4명, 스틸 사진 2명, 방송 3명에 불과했다.
순안 공항에서 환영행사가 끝나자 버스를 타고 평양 시내로 향했다. 첫 느낌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이번 통일대축전에 참석했던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가난한 누이동생 집에 간 기분이었다"며 "오빠가 오랜만에 가니까 어떻게든 대접을 잘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남루함이 묻어났는데,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기자의 느낌과 똑같았다. 평양을 여러 번 방문했던 사람들은 갈수록 거리와 주민들의 모습이 밝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처음에 느꼈던 이 감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민간 대표단들의 숙소는 고려호텔이었다. 1985년에 완공된 44층짜리 건물이다. 1985년이면 서울에서도 44층짜리 빌딩은 많지 않을 때다. 그러나 평양 시내 대형 건물 가운데 80년대 초.중반 이후 새로 지은 것이 거의 없어 보였다.
이번 민족통일 대축전의 3박4일 일정은 대단히 빡빡했다.
저녁 만찬은 보통 저녁 10시가 넘어 시작되어 밤 12시가 다 되어 끝났다. 여기에 풀 기자단끼리 평가 회의도 하고 그래도 술 한 잔 기울이다보면 새벽 3시가 다 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채 마흔이 되지 않은 기자는 너무나 피곤했다. 탁구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현정화씨도 누적된 피로 때문에 17일 오전 동명왕릉 참관 일정을 제쳐놓고 호텔에서 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로한 분들이 상당히 많았던 민간 대표단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역시 한 평생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등 각종 운동(?)으로 단련된 분들 이어서인지 달랐다.
취재 환경은 상당히 불편했다. 북쪽에서 취재기자단에게 할당한 차량은 방송 송출용 1대와, 취재.사진 기자용 1대였다.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서는 현장과 고려호텔까지 왕복해야했기 때문에 효율성이 무척 떨어졌다.
북한의 경제 형편상 남쪽 취재단에게 차량을 더 배치해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다음에는 아예 남쪽 기자단용으로 중고 차량을 장만해서 몰고와 사용하고 그냥 북한에 놓고 가자"는 농담도 했다.
지난해 7월부터 남북 당국자 회담을 비롯해 사실상 남북 대화가 중단되었다가 오랜만에 재개된 여파인지 냉기운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은 차량으로 이동 중에 사진 촬영을 못하게 했다. 지난 2001년과 2003년만 해도 마음대로 사진 촬영을 허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평양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보였다. 행사기간동안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입국한 남측 민간 대표단의 휴대폰도 순안 공항에 내리기 전 수거했다가 인천공항에 돌아와서 나눠줬다.
통신의 불편 탓에 정보 전달이 늦었다. 17일 오전 남측 대표단 사이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는 남쪽의 <연합뉴스>에 먼저 난 것을 거꾸로 연락 받아 알았다. 같은 평양 하늘 아래 있었지만 정 장관의 움직임은 오히려 서울에서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행사 자체의 감동은 컸다. 특히 14일 저녁 7시40분부터 시작된 '자주.평화.통일을 열어나가는 민족대행진'은 인상 깊었다.
그날 비가 무척 많이 내렸다. 평양을 15번이나 방문했다는 한상렬 남측 준비위 공동대표가 "북한과 여러 번 행사를 했지만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천리마 동상 앞에서 약 2㎞ 떨어진 김일성 경기장까지 민간 대표단은 비를 무릅쓰고 행진했다. 길가에 나온 평양주민들도 뜨겁게 환영했다.
이들이 북쪽 당국 설명대로 모두 자원해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진심만은 도로 가운데로 행진하는 민간 대표단들이나 취재하는 기자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기자 개인적으로 평양에서 본 것 가운데 가장 반가운 것은 한국산 자동차였다.
현대의 갤로퍼.산타페.15톤 덤프 트럭, 기아의 비스토.프레지오, 쌍용의 무쏘 등 다양했다. 민간 대표단을 실어 나른 버스도 '1994년 현대자동차 생산'이라고 딱지가 그대로 붙어있는 25인승 미니버스였다.
물론 이는 결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위'를 확인했다는 유치한 감정 때문이 아니다.
평양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건물의 에어콘이 'TCL'이나 '창훙' 등 중국제가 많았고 중국산 대형 덤프트럭이나 포클레인도 심심찮게 보였다. 남북문제 전문가들 중에는 "앞으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놓고 남한과 중국이 경쟁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북한의 대외교역액은 총 35억5천4백만 달러인데 이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39%로 19.6%를 차지한 남한보다 훨씬 높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8일 북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한해 식량 부족분 1백80만톤(4천억원 선)을 전량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나름대로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평양 시내의 한국산 자동차가 반가웠던 것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 증대를 상쇄하는 하나의 징표로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