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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검 기자실. 50명이 넘는 기자들이 이곳에서 취재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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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법조기자 24시
<편집자 註>
최근 ‘신문의 위기’ ‘방송의 위기’라는 말이 언론계에 나돌면서 기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바뀌고, 언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 시각이 상존한다고 해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기자직의 사명을 망각할 순 없다. 기자 중에서도 ‘3D'업종으로 손꼽히는 법조 출입기자의 24시를 취재하기 위해 5월 18일과 25일 서울지검 기자실을 찾았다
5월 18일 오전 7시40분. 서울지검에 도착해 기자실로 들어가자 기자실 관리를 맡고 있는 공무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20여 분이 지난 8시가 되자 기자실이 바빠진다. 출근하는 기자들과 오늘자 신문을 스크랩하느라 바쁜 직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그리고 타사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활기차다. C기자는 간밤에 늦게 퇴근했다며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출근해, 아침을 라면과 우유로 대신한다.
오전 10시. 유전 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사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기자들은 브리핑 내용을 수첩에 열심히 적고 노트북에 옮기거나 전화로 자사에 전달하는 등 각양각색의 취재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25분 정도의 브리핑이 끝나자 기자실이 시끄러워진다. 신문기자들은 내용 정리하느라 바쁘고, 방송기자들은 정오 뉴스 등 생방송 때문에 바쁘다. 브리핑이 끝날 때마다 이런 모습은 반복된다.
오후 1시 반. 기자실이 다시 술렁거린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참고인으로 출두했다. 황 행장은 몰려드는 기자들에 다소 놀란 모습으로 쏟아지는 질문에 “검찰에서 밝힐 것”이라고 짧게 답변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2시. 기자실이 조용하다. 식곤증인지 아니면 전날의 피로인지 알 수 없는 피곤함이 기자실을 메우고 있다. 다들 신문을 읽거나 소파에 몸을 기대 잠시 오수를 청한다. 이 때가 하루 종일 이 곳에서 지내야 하는 법조 기자들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오후 3시. 오후 브리핑이 열렸다. 오전 브리핑 이후 ‘허문석씨 인터폴 수배 예정’이라는 내용이 보도된 후여서 3차장이 웃으며 “보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보도해버렸다”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한다. 이미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기자들도 별 반응이 없다.
저녁 8시. 황 행장에 대한 수사가 길어지자 기자들은 오늘은 몇 시까지 ‘뻗치기’를 해야 하는 지 얘기를 주고받는다. 모두들 빨리 끝나기 바라는 표정이다.
저녁 10시30분. 기자들이 조사실로 올라가 현재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나서 뻗치기에 돌입한다. 방송사 카메라는 출입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기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뻗치기가 1시간을 넘어서자 모두들 힘든 표정이다.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은 엘리베이터가 열릴 때마다 무거운 ENG카메라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고 있다.
자정이 넘어 황 행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온다. 황 행장이 지친 표정으로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차에 오르자 기자들 목소리가 다급해지고, 급기야 차 앞을 가로 막는다. 황 행장의 표정을 담는 카메라 기자도 있다. 2분 만에 상황은 종료되고 기자들 모두 허탈한 표정이다. 그나마 빨리 끝났다고 안도하는 기자도 있다.
5월 25일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서울지검은 아침부터 사뭇 긴장감이 흘렀다. 유전 의혹으로 이광재 의원이 첫 조사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서울지검 입구가 기자들로 복잡하고 포토라인을 두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신문사와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의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황 행장 때보다 두 배가 넘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전 10시 4분. 기다리던 이 의원이 도착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비 내리듯 그의 얼굴로 쏟아진다. 이 의원이 격앙된 목소리로 불법 행위가 없었음을 밝히고 조사실로 올라가자, 기자들은 “또 말이 바뀌었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며 기자실로 향한다.
30분 후 오전 브리핑에서 3차장이 “조사 초기라 할 말이 없으니 오후 브리핑 때 얘기하자”고 하자 한 기자가 “점심은 뭐 먹는지도 알려 달라”고 해 브리핑 룸이 웃음바다가 된다.
오후 3시. 2차 브리핑에서 3차장은 이 의원이 차분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계속 던지자 3차장이 당황하는 것 같다. 기자들은 브리핑 이후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조사 상황에 대해 알아보지만 아직 확실한 게 없는 모양이다. 이 후 기자실에는 또다시 오후의 노곤함이 가득하다.
오후 7시. 기자실 게시판에 오늘 3차 브리핑이 없다는 공문이 붙자 기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친다. 모두들 이 의원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눈치다. 밤 10시가 넘어 3차장이 이례적으로 기자실을 찾아오자 기자들은 3차장 옆에 둘러 앉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례적인만큼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에 불을 켰다.
다시 뻗치기가 시작된다. 새벽 1시40분. 뻗치기한 지 한 시간이 넘어도 이 의원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주시하던 기자들 몇몇은 1층 홀 바닥에 앉아 엘리베이터 쪽을 보면서 컵라면을 먹는다. 새벽 2시 반. 한 기자가 과감히 퇴근을 하자 다른 기자들은 “나올 얘기도 없는데, 탁월한 선택을 한다”며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새벽 3시 35분. 드디어 기다리던 이 의원이 나오자 기자들 급히 이 의원 옆으로 가 ‘핏발 선 눈’으로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의혹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간단히 말하고 자리를 떠난다. 기자실에서 졸던 기자들은 이 의원 갔다는 말에 허탈해한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조용한 새벽 4시 10분. 여전히 남아있는 기자는 2명이다. 내일 무슨 내용을 쓸 것인가를 정리하는 기자와 이 의원이 떠나면서 했던 말을 녹음해서 계속 듣고 있는 기자가 텅 빈 기자실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