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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현 부천YMCA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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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석. 시민운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 것이다. 최초의 시민입법조례였던 담배자판기추방 조례운동, 우리나라 최초의 의정지기단, 수은건전지 수거운동, 1990년대초 지방화시대가 개시되자마자 부천에서 전개된 이러한 운동을 전국이 놀라운 눈초리로 쳐다봤고, 그 중심에는 부천YMCA 황주석 총무가 있었다. 그후 그는 등대운동과 생활협동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1999년초 의정부 지역에서 새로운 꿈을 꾸던 시점, 그는 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심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비인강암이라는 희귀암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일에 대한 열정을 접을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시외곽 공기좋은 곳에 살 생각을 했고, 홍천에서 혼자 알로에 농사를 하다 아들의 소식을 들은 80대 중반의 노부는 아들 내외와 합가한다. 그래서 1999년 10월 의정부에서 가까운 양주시 교현리에 땅을 구하고, 노부는 의정부 전셋집에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면서 출퇴근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7개월 뒤인 2000년 5월 그곳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가족이 비닐하우스에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2년 6월부터 2년여에 걸쳐 집을 짓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5면에 컬러사진이 나온 그 집. 조선일보 사진은 각도를 밑에서 잡았기 때문에 사진만 봐서는 그 집이 호화주택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집에 가본 사람은 흙벽돌과 숯을 섞어서 독특하게 지은 그 집을 보면, 집을 지은 사람이 건강에 아주 관심이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80대 중반의 노부는 당초 건축 일을 하셨기 때문에 아픈 아들과 함께 2년여에 걸쳐 직영으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병으로 휴직 상태에 있던 아들은 시민운동 단체의 연수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가족 규모보다는 큰 2층 집을 지었다.
하지만 작년 초부터 갑자기 병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언젠가는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접고 작년 중반 YMCA를 퇴직한다. 그리고 집을 팔기로 결심한다. 필자에게는 “이제 인제로 들어가 몸을 좀더 돌봐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런데 그에게 노동의 땀으로 얼룩진 그 집을 판다는 것은 시민운동의 마지막 꿈을 접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조선일보 4월 1일자 1면과 5면에 걸쳐 보도된 ‘최순영 의원 투기의혹’의 전말이다. 그 다음 날 최순영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남편이 비인강암 말기여서 치료비 마련 때문에 집을 팔았다”고 울먹이며 밝혔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그의 병명은 아주 가까운 지인 외에 아무도 몰랐다. 본인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조용히 인생을 정리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 가족은 민노당 최순영 의원의 한달 수입 1백80만원, 그리고 80대 중반의 노부가 그 땅에서 농사짓는 수입, 그것이 전부다. 그래서 얼마전 군을 만기 제대한 아들은 휴학을 생각하고 있고, 지속적인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그 집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거기에 돌을 던진다. 어떻게 우리사회는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