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순을 내고 꽃을 피워내는 봄은 역시 인생에서 청년기에 비유될 수 있겠지요? 4월7일은 신문의 날. 1896년 이 땅에 자주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온 <독립신문> 창간일입니다. 선배 언론인들은 오직 진실추구를 위해 불의와 부정에 맞서며 헌신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런 선배들의 피땀어린 분투가 면면히 내려오며 지금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때로는 시대에 맞서며, 때로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시대정신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의 자화상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운 것 또한 숨길 수 없습니다.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초심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사흘 밤낮을 헤맨 끝에 찾아낸 한 줄의 진실이 “회사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는지요?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려고 고뇌하고 있는가? 재미있는 기사 찾기에 몰두하느라 소외된 이웃의 삶에 대해 무관심하진 않는가? 편집간부들과 회사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에 빠져들지는 않는가?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돼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파적으로 보도하지는 않는가? 독자를 여전히 교육, 계몽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몇 년 새 정부 부처의 기자실 개선 등 취재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잇단 대언론 정책과 언론관에 “정부 입장만 이런 식으로 몰아 부쳐도 되나” 싶어 은근히 화가 나면서도,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들의 그동안 행태가 이 같은 조처들을 자초한 측면도 있을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외부환경을 탓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내부의 문제들을 겸허하게 드러내고 찾아내 답을 찾는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괴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 몇몇 고위직 인사들이 탈법행위를 저질러 자리를 물러난 것도 우리의 투철한 기자정신의 산물입니다. 언론의 예리한 눈과 냉철한 머리 그리고 따스한 가슴은 우리사회 발전의 디딤돌입니다. 우리들의 역할과 활동은 스스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기자 자신이 자존감을 갖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뉴미디어시대를 맞아 언론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이미 속보성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방송과 인터넷이 신문을 앞서며 영향력 있는 매체로 부상했습니다. 그렇다손 쳐도 신문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많은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첨단화해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해 나갈 것이 틀림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신문의 날을 맞는 우리들의 다짐은 이제 역사와 진실 앞에 당당하게, 정확하고 공정한 기사로만 말할 수 있는데 모아지기 바랍니다. 자사 이익을 대변하기 보다 ‘대한민국 기자’로서 인권 민주화 평화 진리 휴머니즘 등 보편적인 가치 구현에 모아지기 바랍니다. 신문과 방송이, 서울사와 지방사로 나뉘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지역과 매체특성을 간직한 채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할 때 국민신뢰는 높아지고 저널리즘 발전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시대가 2005년 오늘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은 ‘언론다움의 회복’이라고 봅니다. 모두 뜻과 지혜와 힘을 모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