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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의 편집방향에 대해

"'제3의 길' 지향...기자사회의 공론장 역할 다할 것"

김진수 본보 편집국장  2005.01.14 16: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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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편집국장  
 
  ▲ 김진수 편집국장  
 
연초부터 어둡고 차가운 소식이 많습니다. 언론계가 느끼고 있는 위기의 체감온도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예외 없이 영하권입니다. 언론사간 상호 불신과 냉소는 해를 거듭할수록 농도가 짙어집니다. 언제부턴지 한 언론사에 대한 다른 언론사의 비판은 잘 되라고 때리는 채찍이 아니라 죽으라고 내리치는 칼로 변했습니다. 이 殺氣만 고려한다면 솔직히 요즘 한국 기자들이 ‘기협 회원’이란 단어로 함께 불려질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지난주 경향신문 이재국 차장이 본보의 ‘발언대’난을 통해 참고할만한 지적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면사정상 정체성 등에 대해서만 몇 자 적을까 합니다.



우선 저는 기자협회의 정체성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판단합니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달라졌습니다. 예컨대 70-80년대 기자들은 그들이 어떤 신문사에 있건 비슷한 월급을 받고, 비슷한 역사관을 가진 同質體였습니다. 당연히 우리 선배들은 ‘반민주독재 투쟁’이라는 하나의 시대정신 아래에 별 어려움 없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는 진리도 변합니다. 예를 들죠. 아날로그시대에는 원본과 복사본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는 복사본도 원본과 똑같습니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그림 파일은 수백만장을 복사해도 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원본과 복사본은 다르다’는 아날로그시대의 진리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우리는 ‘기자’라는 똑같은 단어로 호명되지만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방송사와 신문사, 메이저와 마이너, 중앙지와 지방지 간의 임금격차는 상상을 넘는 수준입니다. 임금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 인생관, 라이프스타일 역시 다원화된 사회만큼이나 다양해졌습니다. 기자사회는 이제 도저히 하나의 범주로 구분할 수 없는 異質體가 된 것입니다.



서로 다른 異質體가 여기저기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언론 지형도라고 할 때 <협회보>는 어떤 모습을 견지해야 할까요? 저는 각기 다른 생각과 철학을 갖고 있는 다양한 기자들의 공론장으로서 <협회보>가 기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상의 자유시장 원칙에 따라 기자들이 <협회보>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가장 많이 지지받은 의견이 상응한 대우를 받는 그런 공론장 말입니다. 이 공론장에 처음 의견이 상정될 때는 어떤 견해도 특별히 보호되지 않으며, 동시에 이유 없이 배척되지 않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권위주의 보다 우월한 이유는 서로 다른 견해들의 경쟁적 공존을 보장하는데 있습니다.



<협회보>를 제작하는데 있어서의 이념적 스텐스는 앤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에서 지혜를 얻을까 합니다. 제3의 길이란 말 그대로 좌도 우도 아닌 또 다른 대안을 의미합니다. 제3의 길은 좌 우 양측으로부터 비판 받을 여지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좌와 우 사이 즉 ‘between’의 위치에서 절충적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좌 우 모두를 아우르는‘above’의 입장에서 <협회보>를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의지는 가령 좌담회를 개최할 경우 양극단을 대변하는 패널 2사람을 초청하던 과거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중도적 입장의 패널도 포함시키는 등의 실천으로 관철될 것입니다.



<협회보>를 제작함에 있어 ‘양시양비론’을 남용하지 않겠으나 필요할 경우 당당히 양시양비론을 차용할 것입니다. ‘중도’의 입장에서 볼 때 ‘양시양비론’은 양 극단을 견제할 수 있는 유용한 논리장치입니다. 포스트 모던의 다중 정체성 시대에는 선과 악, 좌와 우와 같은 이원론적 세계관은 동의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 어떤 집단도 온전히 옳거나, 온전히 잘못될 수 없기 때문에 <협회보>는 당분간 ‘제3의 길’을 고수하고자 합니다.



‘협회보는 소속 기자와 편집국장이 만든다’는 인식은 일부만 맞는 것입니다. <협회보>는 ‘기자협회의 간행물 제작 내규’를 기본으로 합니다. 언론자유 수호와 외부 압력 배제가 골자인 이 ‘내규’는 <협회보>의 견고한 제작정신입니다. 또한 <협회보>는 현직기자 10여명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자협회장은 당연직 편집위원입니다. 일종의 자원봉사자인 ‘편집위원’들은 <협회보> 기자들과 함께 매주 보다 나은 지면을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땀’과 ‘고민’이 녹아있지만 회원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