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약자편에 서다 지난 2일 선종한 고 김승훈(마티아) 신부의 민주화 운동은 보도지침으로 대표되는 정권의 언론통제에 대항했던 언론자유수호 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김 신부가 지난 86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보도지침 폭로사건에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엄혹했던 독재시기, 보도지침이 폭로된 전후로 김 신부의 역할은 지대했다.
86년 9월 16일 말지 특집호-‘권력과 정권의 음모’편을 통해 보도지침이 세상에 알려지기 몇 달 전인 86년 7월경.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편집부 기자(현 한국언론재단 이사)는 서대문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 기자는 이미 정권의 보도지침 1차분을 말지에 전달한 상태. 곧 2차분을 전달하기로 했고 머지 않아 치밀하게 진행돼왔던 정권의 언론탄압이 세상에 알려질 터였기에 초조함은 더해갔다. 문건이 폭로되기 전 역풍을 우려해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을 찾던 김 기자에게 김태홍 민주언론협의회 사무국장(현 국회의원)의 소개로 알고 지내던 김정남 신부가 서대문에 위치한 작은 성당을 찾아가보라고 알려온 것이다.
성당안으로 들어선 김 기자에게 한 신부가 온화한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김승훈 신부. 항상 민주화 대열에 앞장서고 있던 김 신부가 보도지침 폭로의 든든한 ‘보호자’ 역할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김 기자는 김 신부 앞에서 정권의 언론탄압에 무기력했던 현역 기자의 한 사람으로 차분한 고해성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보도지침의 내용은 전혀 조작되지 않았으며 정부와 편집국 사이에서 존재하는 틀림없는 실체”라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작성해 보도지침 문건과 함께 김 신부에게 맡긴다. 김 신부는 이때 김 기자에게 “이 내용은 분명히 국민들에게 전달돼어야 할 부분”이라면서 “사제로서 분명한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후 김 신부가 공동대표로 있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민언협과 함께 보도지침 문건 폭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탄압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또한 이 사건으로 김태홍 민언협 사무국장 신홍범 실행위원 그리고 김 기자가 차례로 구속되자 이들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미사를 집전하는 등 활발한 구명활동을 벌였으며 ‘카톨릭 자유언론상’을 제정해 1회 수상자로 위 세사람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김 신부는보도지침 문건 폭로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그의 적극적 활동으로 이들은 감옥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김 신부를 처음 본 순간 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분이라는 걸 한 눈에 알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김 이사는 “김 신부 같은 분이 계셨기에 문건폭로와 구속에 이르는 과정에서 마음이 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