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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자 영감님'과 쓰루가 도미구이를 먹다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2)

홍성식 경북매일 기자  2026.04.04 1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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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일본의 소도시 쓰루가에서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주인장 영감님.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가는 6월. 일본의 소도시 골목은 깨끗하고 한적했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거나, 줄까지 서가며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 여행자’에서 멀어진 50대 중반 사내는 점심 메뉴를 고르며 골목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세상은 좋아졌다. 일본어를 읽지 못한다 해도 걱정할 게 없다. 가게 밖 알림판에 써놓은 ‘오늘의 특식’을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돌리면 되니까. 쉽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운 좋게도 ‘도미구이’가 준비된단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바다가 가까운 고장은 생선 요리가 맛있다. 재료의 신선함이 보장되고, 물류 이동 비용이 적게 드니 가격 또한 비싸지 않다. “됐다. 저걸로 먹자.” 혼잣말을 했다.


호쿠리쿠 지방과 간사이 지방을 연결하며 이미 1천 년 전부터 항구도시로 이름 높았던 쓰루가(敦賀)에서의 첫 끼니가 정해졌다.


고동색 주렴을 걷으며 식당으로 들어서니 테이블과 벽에 걸린 그림이 낡았다. 뿐인가. 주인장도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오랜 세월 한 곳에서 영업해온 노포(老鋪)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짚어 ‘도미구이’와 사케 한 잔을 주문했다.

2025년 초. 부산에서 강릉을 잇는 동해선 철도가 개통됐다. 철로가 지나는 울산,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등의 도시는 기차를 타고 찾아올 관광객을 기다리며 주변 인프라 정비에 나섰다.


일본은 이미 111년 전에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고속철도를 계획한 나라다. 기차 여행과 관련된 것이라면 벤치마킹할 게 적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다. 지난해 6월. 오사카에서 시작해 교토와 나라를 거쳐 쓰루가와 도야마까지를 기차 타고 돌아봤다. 취재 반 여행 반의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오사카와 교토의 화려함과 번잡함에 다소 질려있던 터라 인구가 6만 명 남짓이라는 쓰루가 도심의 조용한 분위기가 더없이 좋았다. 해산물 요리가 흔하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는, 귀한 도미 한 토막이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도미는 ‘바닷물고기의 여왕’으로 불린다. 몸통은 유려하고, 비늘은 단단하게 반짝이며, 푸른 보석을 닮은 작은 점이 얼핏얼핏 보이는 생선.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식재료지만, 일본 사람들은 고사(告祀)를 지낼 때 사용할 정도로 보다 귀하게 취급한다.


껍질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회로 먹는 ‘마쓰가와’가 일품이지만, 사실 도미는 구워도 맛있고, 탕으로 끓여도 국물이 혀를 살살 녹인다. 어떻게 요리해도 괜찮다는 이야기. 게다가 그날 도미를 구워준 사람은 반세기 동안 주방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뚜껑 있는 조그만 그릇에 밥과 국이 담기고, 도미 한 토막이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식탁에 놓였다. 주인인 동시에 주방장으로 보이는 영감님이 ‘맛이 어떠냐?’는 표정으로 가볍게 웃었다.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 주인장과 젊은 시절부터 친구라는 또 다른 영감님은 달랐다. 내 옆 식탁에서 혼자 생선회를 안주 삼아 독한 고구마소주로 낮술을 마시던 그는 “어디서 왔냐? 쓰루가엔 왜 왔냐?”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말을 걸었다.


손짓과 발짓, 서툰 영어, 거기에 일본어와 한국어까지 마구 뒤섞인 카오스 같은 대화가 제법 길어졌다.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주인장의 40대 딸이 중간에서 우리 둘의 소통을 도왔다. “일본 기차에 대해 알아보려고 왔다”는 내 말에 영감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젊었을 때 오사카 사는 여자랑 연애를 했지. 여기서 기차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왜 그리 기차 속도가 느리게 느껴졌는지. 요즘처럼 빠른 신칸센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청춘시절 연애담을 들려준 영감님. 도미구이와 함께 기억될 그날의 청춘 한 조각.

1970년대를 되짚어 추억하는 영감님의 눈동자가 청년의 그것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 가슴 속 화인(火印)으로 남는 법.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그날 쓰루가의 노포에서 내가 맛본 건 비단 부드럽고 간이 딱 맞은 도미구이만이 아니었다. 부두에서 배를 수리하며 살았다는 영감님의 잊을 수 없는 ‘청춘 한 조각’도 함께 맛봤다. 그 맛이 어땠냐고? 기가 막혔지.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