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뉴욕타임스 기자가 최근 몇 개월 동안 중요한 사건들을 취재하면서 기만적인 취재행위를 해온 사실이 뉴욕타임스 자체 조사팀에 의해 밝혀졌다. 이번에 확인된 광범위한 조작과 표절행위는 이 신문의 152년 역사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순간이자 독자신뢰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다.”
지난 5월 11일자 뉴욕타임스가 실은 1면 톱기사의 리드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 기사가 전하는대로 이미 널리 알려진 제이슨 블레어 사건은 뉴욕타임스에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을 안겨줬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이 신문의 자존심은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걸릴 것이 틀림없다.
이 사건의 흐름을 보는 나의 관점은 그러나 사건 자체의 의미보다 위기에 빠진 뉴욕타임스가 블레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더 맞추어져 있다. 또 미국의 언론계가 다른 언론사의 곤경을 어떻게 다루는가 역시 중요한 관심사다. 한국 언론계에는 문일현 사건을 비롯해 이 보다 더 충격적인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5월 11일자 뉴욕타임스는 나에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이 신문은 이날 1면 톱기사로 블레어 사건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무려 4면을 광고 없이 이 문제에 대한 기사들로 채웠다. 여기에다 3면에 실은 편집자 노트 칼럼을 역시 이 문제에 대한 해명과 사과로 채웠다. 편집자 노트에 따르면, 블레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이 신문은 5명의 기자를 1주일 동안 투입했다. 이들은 다른 조사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이 기간동안 1차로 과거 7개월간 블레어 기자가 쓴 기사 73개를 검토했다. 조사의 주요 내용은 기사들에 사용된 취재원들을 모두 다시 접촉해 인용과 사실의 정확성, 블레어와의 접촉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또 한편으로 블레어의 출장과 통화기록, 회사내 데스크들에 대한 확인도 병행했다. 편집자 노트는 이밖에 경영진이 별도로 자사 편집국의 의사결정 과정을 조사하는 작업도 진행한다고 밝히고, 자사 기자들은 물론 언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직업의 신뢰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나는 아직 1면 톱기사로 자신의 잘못을 밝히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실은 한국 신문을 본 적이 없다. 광주사태의 왜곡보도같은 철저한 직무유기의 경우에 대해서도 어느 언론사가 철저한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는얘기를 듣지 못했다. 국정원장에게 언론문건을 만들어 정권이 언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제안한 기자에 대해서도 그 전말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보도되지 않았고, 수도 없이 문제가 불거졌던 촌지사건들 역시 유야무야 묻혀져 갔다.
뉴욕타임스가 블레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이러한 우리의 현실과는 달랐다. 언론은 투명성과 신뢰가 생명임을 철저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블레어 문제를 다루는 다른 언론의 자세 또한 우리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 한국 언론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대체로 동업자 눈감아주기 관행을 택해 최소한의 보도로 덮고 지나갔다. 그러나 미국 신문과 방송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경쟁사의 문제를 크게 다룬다. 뉴스위크는 곧 바로 이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주요 네트워크 TV까지 저녁 뉴스시간에 이 문제를 리포트하며 책임자의 처벌을 주문하기도 한다. 동업자 봐주기는 업계 전체가 함께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