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시민단체들이 경찰청의 시민사회 여론동향 문건 작성을 규탄하며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경질을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언론보도를 통해 이태원 참사 후 경찰청이 시민단체 관계자와 접촉해 동향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고, 특히 국민의 안녕이 아닌 정권의 보위로 목적이 읽히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중행동,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단체는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의 여론동향 문건 작성을 규탄했다. 단체들은 경찰청 문건에 담긴 내용이 허위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경질”이란 입장을 밝혔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경찰청 문건은)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시민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편가르고 누가 권력의 편인지 가려낸다. 언론들이 비판하면 ‘어떤 놈들이냐’고 사찰하는 더러운 의도가 이 문건에 그대로 묻어 있다”며 “정권 지지율 떠받치기에 골몰한 이 문건은 경찰이 자발적으로 작성했다기보다 권력 핵심의 누군가가 요구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문건 작성을 지시한 사람과 목적 문건이 보고된 과정까지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종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도 “경찰은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는 애도기간에 이번 참사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아닌 정권의 위기 수습책을 마련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며 “대통령은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들께 사과해야 한다. 또 총체적 무능과 경악할 만한 인식을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일 SBS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31일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언론과 관련한 여론동향 정보를 수집해 내부 문건을 작성했다. ‘정책 참고 자료’란 제목의 문건 중 특히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 부분엔 구체적인 단체명이 거론되며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이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한 대형 이슈라며 내부적으로 긴급 회의 등 대응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관련기사: <[단독] 참사 이틀 뒤 '시민단체 탐문'...세월호 언급하며 "정부부담 요인 관심">)
SBS는 해당 보도에서 경찰관 집무집행법 대통령령 상 경찰관 정보수집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호'인데 이번 문건은 "정부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아울러 경찰청의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해서"란 해명을 따른다 해도 "(위험을 막기 위한 정보수집이 아니라) 사후에 정권 입장에서 사고를 '관리'하기 위한 정보수집에만 열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만큼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도리어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허위 날조 사실로 프레임을 조작했다”며 “전국민중행동은 문건에 적시된 말이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도 “여성연합은 경찰과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문건에 나온 내용을 검토한 적이 없음에도 경찰청은 여성연합이 마치 이번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악의적 프레임을 씌웠다”고 비판하며 “한편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서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애쓴 일선 경찰들이 아닌 경찰 수뇌부와 지자체, 정부가 참사의 책임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승렬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공동대표 역시 세월초 참사 당시 기무사의 유족 사찰을 예로 들며 “잘못된 정보를 올려서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하는 이 무능한 관료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정권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언론노조는 이날 오전 경찰청 문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면서 “문건의 작성 지시자, 목적, 최종 보고 대상까지 낱낱이 규명돼야 하며, 위법적 요소가 드러나면 응당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민의 생명 대신 정권의 안위에 동원된 공권력의 후진적 작태 앞에 우리는 애도와 분노를 구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