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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사설 거듭나야 신문이 산다

우리의주장  2003.01.22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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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문한테서 가르침을 받으려는 독자는 없다. 독자는 자신의 견해를 매체의견과 비교해서 보완하고자 신문을 읽는다. 신문이 독자를 무지몽매한 계몽대상 쯤으로 여기는 투의 주의주장 설파엔 이미 냉소하고 있다.

어느덧 신문이 사회적 식견과 전망제시 기능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버린 것이다. 다만 다양한 미디어 분포중 신문은 아직도 주요하게 선택되는 재래 매체의 하나일 뿐이다. 이제 독자는 ‘00일보’라는 신문이 전달하는 뉴스의 빛깔과 주장을 타 매체와 눈여겨 비교평가하고 있다. 신문이 제시하는 ‘신뢰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신문들이 들이미는 신뢰성 꾸러미 자체를 대상화시켜 품평한다. 그 신뢰성의 메시지를 취사선택한다. 바야흐로 진정한 ‘독자의 시대’가 도래할 조짐이다.

중앙일보가 지면편성의 변화를 선보였다. 조선일보 또한 지면 변화를 가시화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독자를 위한 전면적 지면혁신 선언”이라고 말했다. 살펴보면 정치종합-정치해설-사설 시론 독자란-국제-문화-사회 순서의 한국신문 획일적 지면배치 구성을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신문 지면배치틀의 모방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도 확연히 있다. 본 섹션 사회면 자리에 사설논평 독자면을 배치하여 구미신문의 지면편성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세계신문업계를 주도하며 국내신문들의 잦은 인용보도로 지명도가 탁월한 뉴욕타임스는 메인섹션 구성이 종합-인터내셔널-내셔널-사설 논평 독자면 순이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종합-내셔널뉴스-정치-월드뉴스-사설논평독자면 구성순이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지면변화를 도모하면서 주창한 독자제일주의는 눈여겨볼 만하다. 16대 대통령선거보도를 치뤄내면서 오프라인 매체는 그동안 소수미디어로 치부되던 온라인 보도 매체의 급격한 부상에 화들짝 놀랐다. 온라인 뉴스 매체의 신속한 보도와 기동력, 24시간 쉬지 않는 속보성은 기존 공중파 방송 매체들 조차 능가하는 것이었다. 인쇄지면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자보도량, 모든 관련 기사의 집중 링크, 생생한 디지털 화상, 소형비디오카메라를 통한 현장생중계 오디오겸비 동화상, 뉴스가치 판별에 의한 신속한 페이지편집 기동력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네티즌의 쌍방향식 보도참여 더 나아가 ‘기자 따로 독자 따로’의 재래식 벽을 파괴한 점은 미디어 지평을 구체적으로 확장한 의미로받아들여진다.

도도한 새 물결을 신문매체가 적극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생존전략에 부응하는 것이다. 독자참여 지면을 늘리고 노출주목도가 뛰어난 지면으로 사설-논평-독자면을 집중편성함은 진전으로 평가된다. 반대의견 코너 마련, 논쟁적 이슈에 대한 토론마당 등 신설은 향후에 그 성과를 곰곰이 새겨보고자 한다. 이번 변화의 내실과 허실은 독자가 판별할 것이다.

이같은 지면개편과 관련, 기자협회는 한국신문의 사설란 운용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의 대다수 신문들의 사설란은 획일적으로 2면에 배치되며 균등한 3꼭지의 사설이 원고지 4매분량으로 자리잡는다. 해당매체의 중요 보도사안에 대한 입장과 평가를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사설은 글쓰기의 본보기이며 시대를 읽어가는 주요지표로 자리매김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한국신문들의 사설은 천박하게 그 깊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누구도 진중하게 그 메시지를 헤아리며 시정 세론의 중심에 놓아두지 않는다. 분량의 제한으로 속깊은 논리전개가 불가능하며 단순 촌평에 머물고 있다. 대안제시나 해법제시는 언감생심이다. 모든 갈등과 문제점의 원인을 정부 제도권의 무능력 취약성으로 그 탓을 돌리는 환원주의 논법만이 횡행한다. 1일 3꼭지의 A4용지 한 장 분량 사설이므로 한국 신문들이 다루는 분야는 참으로 광범위하다. 모든 것을 평가재단할 수 있다는 과잉자신감으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다. 하지만 결론은 추상적이며 도덕적 당위성일 뿐이다. 쌍방간의 논란 주제에는 여차하면 양비양시론이다. 제목 또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론의 무게에 걸맞지 않게 노골적이며 공격적이다. 정당의 대변인들이 내놓는 논평자료의 제목과 별 차별성이 없다.

이제 주요 한국신문들이 내놓는 스스로의 개혁선언과 맞물려 사설란 또한 거듭나야 한다. 많이 알려져있는 구미의 신문 사설도 1일 2~3개 꼭지를 게재하지만 내용은 충실하며 깊이가 있다. 경중완급을 가려 사설 상하배치와 분량을 차별화 조정한다. 대안없는 반대논리를 강변하지 않는다. 회사이익만 좇는 사설(私說)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다. 이제 한국의 사설도 격변의 지구촌과 주변강국들의 세력대결로 출렁거리는 한반도를 아우르는 전망과 속깊은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독자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정치판 촌평만이 가득한 ‘백화점사설’은 거두어야 한다.

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 가는부지런한 한국인들이 아침에 읽은 사설을 다시 한번 정중히 일독하면서 가슴 한켠에 되새기고 싶은 그런 감동의 사설을 우리는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