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기자 2022.01.27 18:51:13
진심 어린 사과도 명확한 대책도 없었다. 대주주 비판 기사 50여개 일괄 삭제 조치 사태로 26일 열린 서울신문 기자 총회는 기자 40여명이 모여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날 기자들은 황수정 편집국장에게 ‘호반건설 대해부’ 시리즈 기사 삭제를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있는 해명과 사주에 의한 편집권 침해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임 경영진 때 합의했던 상황이라 편집권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책임 회피성 발언, “내 재임 기간에 보도한 기사는 반드시 막을 것”이라는 공허한 선언만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기자 총회에서 황수정 국장은 지난 16일 기사 삭제가 결정된 6인 협의체에서 기사를 내리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황 국장은 “(기사 삭제 결정 이틀 전인) 지난 14일 사장 직권으로 기사를 내리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해당 방식으로 기사를 삭제하는 건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6인 협의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사 내리는 걸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는데도 내려진 상황인데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되나. 그 혼란을 편집국에 가져와서 얘기했어야 하나”며 “호반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사실 숙명이든 뭐든 준비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장 임기 중에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와 같은 유사한 일이 생길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내 의사가 먹히지 않아 기사가 훼손됐을 때는 직을 내려놓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일(호반 대해부 기사 삭제 건) 관련해선 내가 직을 걸 필요는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총회에선 편집국장 또한 해당 기사가 오보라고 보지 않고, 기사 삭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6인 협의체에 피력했다는 점, 기자들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삭제된 기사들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황 국장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기사”라며 기사 복구엔 선을 그었다. 황 국장은 “(기사를 복구하면) 또 다른 혼란이 온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건 이 기사를 내리면 안 된다는 얘기라기보다 우리가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있으면 그때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부분 아니냐는 의미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기자들 "기사 삭제, 독자들에게 사과해야"
독자들에게 기사 삭제 경위를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황 국장은 “어떻게 해야 현명한 건지 생각해보겠다”며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할지 고민을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기사 삭제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단체협약에 편집권 독립 관련 명시 등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냐는 물음에 황 국장은 “단순히 직을 걸겠다는 건 지금 여러분한테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며 “좋은 장치가 있으면 알려 달라. 제가 그걸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총회에선 “호반에 인수될 때 위로금을 받았으니 기사 삭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기자들의 반발을 샀다. 서울신문 한 부장은 “호반이 우리와 갈등을 빚었던 일들을 다 털고 가자는 이유로 위로금을 받은 거다. 그 중 하나가 기사 삭제가 된다고 본다”며 “호반이 공식적으로 사주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같은 회사가 된 거다. 호반과 갈등을 빚었던 부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감각이 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위로금에 기사 삭제가 포함돼 있다는 마치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협상 과정에서 기사 삭제에 대한 언급도 나온 적이 없다. (기자들이) 우리사주조합 주식을 가진 것에 대해 가치를 받은 것”이라는 기자들의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황 국장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편집국의 모든 목소리는 아니“라며 ”부장이 힘들게 말했던 부분 저런 목소리도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서 생각을 하고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자 총회가 뚜렷한 대책 없이 편집국장과 기자들 사이의 간극만 확인하는 자리였다는 기자들의 성토가 나온다. 기자들은 기사 삭제 사태와 관련해 기수 성명이 이어지고, 총회까지 개최됐지만 이대로 잠잠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총회에 참석했던 서울신문 한 기자는 “침묵 속에서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지만, 기자들이 이렇게 요구한다고 해서 들을 것 같지 않다는 걱정이 든다”며 “‘두번 기회는 없다’고 곽태헌 사장이 했던 경고를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이대로 가면 서울신문은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 이렇게 기사를 함부로 삭제하는 신문사를 신뢰하고 돈 주고 사보겠냐”고 토로했다.
서울신문지회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감있게 설명하지 않는 행태에 실망"
한편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는 27일 성명을 내어 “총회에 참석한 서울신문 기자들은 최근 발생한 ‘호반 TF 관련 기사 삭제’가 다시 일어나선 안 되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이 사안을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 등 일부가 밀실에서 졸속으로 결정하고, 더구나 문제가 공론화된 뒤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감있게 설명하지도 않는 행태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경위를 밝히고 사과하는 책임감있는 조치 △곽태헌 사장의 “내부 분열을 하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경고한다. 두 번 기회는 없다” 발언에 대한 유감 표명, 6인 협의체의 근거에 대한 충실한 설명 △편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위해 독립적인 협의체 구성을 단체협약 등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