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깨기, 뒤집어보기, 신경쓰기, 참견하기. 12월 대선을 앞두고 바빠진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대선보도에 대한 열망이 그들을 재촉한다.
지난 21일 오후 7시. 서울시 충정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1층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허윤정 씨(26)도 그 중 하나다. “선거보도 모니터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하게 됐어요. 예전엔 문화면, TV프로그램, 운세를 먼저 보고 정치뉴스는 제목만 보는 정도였어요. 요즘엔 하루 평균 한 시간씩은 신문을 봐요.”
대선미디어공정선거국민연대 산하 선거보도감시위원회 신문모니터팀 3차 회의는 예정시간보다 10분 늦은 7시 40분에 시작됐다. 2인용 책상 8개를 마주 붙여놓았는데 빈자리가 없다. 한겨레신문을 맡고 있는 한성진 씨(중앙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는 오늘 처음으로 발제를 맡았다. “대학생이면 대선보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이미지 위주의 보도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는 것은 막아야 하잖아요.”
이들이 초보라면 정정일 씨(29)는 경력 5년차 고참이다. 98년 민언련 언론학교에 참가한 게 인연이 됐다. “언론이 바뀌었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지적되는 문제가 계속 지적되거든요. 예컨대 후보단일화 보도를 보면 ‘명분’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앞서 후단협의 태도나 한나라당 입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똑같이 비판하지 않았어요. 이중적이죠.”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하는 정씨는 업무가 없는 오전 시간 반을 국회도서관에서 신문읽는데 투자한다. “27일부터는 선감위 일일 논평에도 참여하기로 했어요. 12월말까지 매일 오전 10시 민언련 사무실에 모여서 2시까지 준비해요. 번역일을 새벽에 많이 하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걱정이에요.”
대구참여연대 시민감시국 허미옥 씨. 최근 세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새벽 1시 퇴근은 예삿일이다. 2002 대선참언론대구시민연대(참언론시민연대) 사무국장을 맡으면서다. 지난달 21일 발족한 참언론시민연대는 대구에서 처음 생긴 대선보도 감시기구다. 기존 단체의 산하조직도 아니고, 단체들의 연대모임도 아니다. “대선에 어떻게 참여할까 고민하다가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던 김재훈 교수, 박명석 PD, 권혁장 전 시민감시국장 등과 논의를 시작했어요. 10월 8일 첫모임을 가진 뒤 25명을 모아 곧바로발족했지요. 다들 지역언론에 대한 감시 필요성, 언론보도를 보면서 ‘이게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거죠.”
지난 11일 타블로이드 8쪽 참언론시민연대 통신 첫호를 발행하고 난 뒤 후원금 15만원이 입금되고, 자원활동을 하겠다는 대학생들의 전화가 쏟아질 정도로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활동은 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루어진다. 주요 코너로는 ‘12인의 언론신경쓰기’ ‘대선보도모니터’, ‘깸돌이’ 등이 있다. ‘언론이 만든 세상을 깨는데 앞장 선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깸돌이는 허 국장과 경북대 학생 4명이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코너다. 언론보도가 유권자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허 국장은 “정치인들의 손놀림, 발놀림을 따라다니면서 대구지역 민심, 표심을 얘기하는데 진정한 여론은 유권자들을 만나서 직접 듣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언론비평칼럼인 ‘12인의 언론신경쓰기’는 대학교수가 주축이 됐다. 그런데 언론학과 교수는 없다. 정태욱 영남대 교수도 법학과에 있다. 정 교수는 “헌법을 실현하는 게 정치과정이고 이는 여론에 의해 좌우된다. 소수 신문이 여론을 주도하고 진실을 감추는 것을 보면서 헌정질서 문제가 언론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외 박명석 대구MBC PD, 이동유 대구CBS PD 등 현직 언론인,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등이 눈에 띈다. 대구경북 인의협 기획국장이기도 한 김진국 씨는 “대구 경북 지역이 특정 정당 일색을 보이고 있는데 지역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언론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동참 이유를 밝혔다. 평소 중앙지 2개, 지방지 2개를 보는 데다 요즘엔 진료시간 틈틈이 기사 스크랩을 하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다. 이동유 대구CBS PD는 참여 동기에 대해 “언론인 스스로 개혁 주체로 나서지 않으면 언론개혁은 힘들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지역언론간 상호비판문화가 부족해 외부 언론감시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참여도 눈길을 끈다. 지난 5일 계명대학교에서는 ‘우리 공정보도하게 해 주세요’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계명대 신문방송학과 ‘참언론연구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패널 8명은 언론사의 지지후보 표명에 대해 찬반 토론을 폈다. 언론 편파보도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다가 나온 주제였다. 학회장인 이지은 씨는9월부터 매주 일요일 철야작업을 했던 것보다 어디까지가 편파보도인지 따져보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의 고민은 최근 참언론연구회가 만든 웹진 언론모니터 코너 ‘언론 참견하기’에서 계속 된다.
아마 최연소 언론파수꾼들이 아닐까. 안양고등학교 언론동아리 ‘울림’ 회원들. 매주 목요일 5시부터 6시 30분까지 교실 하나를 빌려 언론모니터 활동을 한다. 야간자습 시간이지만 특별히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 회원 10명은 각자 맡은 매체에 대한 A4 한 장 분량의 모니터 보고서를 준비해온다. 모니터 기준은 올초 자체 토론을 거쳐 마련한 5가지, △공정보도 △허위 추측 없는 보도 △정책 중심 보도 △군소정당에 대한 지면할애 △시민들의 투표 참여를 높이는 보도 등이다.
장혜련 양은 “아침에 학교 가면서 신문을 보고 자율학습 시간에도 틈틈이 봐요. TV토론회는 가족들에게 녹화를 부탁해 집에 가서 보고요. 공부에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를 보는 눈이 커졌거든요.” 12월에는 더 바빠질 모양이다. 곧 공식 보고서도 내고 홈페이지도 개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