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국내 언론에서도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인권’의 측면에서 다수 보도가 나온 일은 고무적이지만 언론계로선 SNS에 의존하거나 외신 보도를 인용할 수밖에 없는 중동 인프라의 부재를 드러낸 만큼 과제를 남긴다. 사안의 특수성은 있지만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맥락 없이 단순 전달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줍줍’처럼 언론사에 걸맞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는 일 등도 자성할 지점으로 꼽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아프가니스탄’을 검색하면 지난 8월 한 달 간 54개 매체는 3329건의 뉴스를 내놨다. 지난 2000년 이후 20년 간 아프간이 거론된 월간 보도 수가 이번보다 많았던 달은 911테러와 그 직후인 2001년 9~11월, 한국인이 탈레반에 인질로 잡혔던 2007년 8월에 불과하다. 이 중 상당 지분을 차지한 뉴스는 여성인권의 후퇴를 우려한 기사들이었다. 국내 9개 종합일간지는 지난 16일~19일 기간 내내 1면을 통해 아프간 소식을 전했는데, 특히 19일엔 모두 ‘여성’ 혹은 ‘아동’의 인권 하락을 다룬 사진, 기사를 실었다. 중동 국가의 인권문제에 국내 언론이 이만큼 관심을 둔 경우는 희소했다.
국제뉴스 홀대에 ‘중동 기자’ 사라져... 대부분 외신·SNS 인용 등 의존
이 같은 뉴스는 국내 언론계 중동 인프라의 부재를 드러냈다. 제약 속에서도 현지인과 SNS, 전화 등을 통해 기사를 쓴 (18일 중앙일보), <카불의 MZ세대 “그 누구도 탈레반 안 믿어...여학생들 걱정된다”>(19일 조선일보) 등이 있었지만 SNS와 BBC·뉴욕타임스·CNN 같은 외신 인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명백해서다. 당장 기자를 파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약 10~2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직접 아프간 취재를 가는 일이 있었던 반면 현재는 그런 흐름조차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 핵심이다.
‘2020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국내 신문·방송·통신사 해외특파원은 총 137명으로 미국, 중국, 일본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나마 중동권이라 할 카이로(연합뉴스, 동아일보), 두바이(KBS) 특파원을 합해도 3명에 그친다. 외신에선 클라리사 워드 CNN 특파원이 최근까지 카불을 현장취재하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파원을 지낸 한 기자는 “중동 이슈를 비롯해 우리나라만큼 국제뉴스가 홀대받는 나라가 없다. 기본적으로 국내 주목도가 낮기 때문에 발제를 해도 먹히지 않고 결국 안하게 된다. 현재 레거시에 손꼽히는 중동전문가라고 할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거길 왜 가냐’는 기자들 인식 역시 팽배하다. 분쟁이 터질 때만 반짝 관심을 갖고 사람 찾느라 바빠지니 기사가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서구 거대 언론이 한 지역과 이슈를 몇 십년 추적하는 기자들을 앉혀놓고 현지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린 그런 접근 자체가 안 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했다.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편적으로 전하는 기사는 많지만 정작 그런 일이 벌어진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전하는 뉴스는 드물다는 비판도 나온다. 911테러부터 지난 20년을 돌아본 ‘아프간 전쟁일지’ 등을 포함한 <미군 철수 끝나기도 전에...“사이공 함락 때보다 치욕적”>(16일 중앙일보), <카불 미대사관 긴급 철수작전...‘제2의 베트남 패전’ 치욕>(16일 한국일보), <활주로에 수천명 ‘아비규환’...“사이공 탈출 때보다 심각”>(17일 경향신문)처럼 역사적 맥락을 전하려는 뉴스도 분명히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에 근무했던 송첫눈송이씨의 기고 연재를 시작한 바 있다.
일간지들, 여성·아동 인권 하락 우려 다루며 1면에 사진·기사
하지만 다수 온라인 기사, 방송사 리포트 등에선 우려가 현실이 된다. 통상 민주정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예상됨에 따라 이벤트 하나하나를 주목하는 의미도 크지만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 증진을 위해선 사건사고의 선정성, 이미지 소비를 넘어서야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지난 15일~23일 9일간 각사 메인뉴스를 통해 총 54개의 아프간 관련 리포트를 전했는데, 이중 심층리포트는 거의 없었다. 아프간 상황을 영상과 전하는 보도, 미군 철수의 의미와 한국에 미칠 파장, 각국의 반응과 셈법 등을 다룬 ‘현재의 얘기’가 주를 이뤘을 뿐이었다. 지상파 한 기자는 “개별 사건사고를 전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사람이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영상처럼 ‘그림이 되는 이미지’를 쓰려는 측면이 상당히 있었다고 본다”고 했다.
일부 국내 언론은 미군이 아프간 정규군을 지원하며 남긴 무기와 장비가 탈레반에 넘어가게 됐다는 보도를 전하며 “‘줍줍’했다”는 표현을 써 언론으로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20일 논평에서 “‘줍줍’이라는 게임 용어를 제목으로 내세워 이번 탈레반 사태를 오락적 요소로 치부했다”며 탈레반의 무기 획득이란 위협 요소, 관련 분석이 “‘줍줍’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두 지워져버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