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5월20일을 기자의 날로 제정, 기념하고 있는 것은 광주민주항쟁이 감행되던 1980년 5월20~27일까지 전국 대부분의 언론사가 검열, 제작거부를 하면서 광주 항쟁에 동참한 것을 기리는 것이다. 기자협회가 올해도 기자의 날 16주년 행사를 코로나19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거행하는 의미와 그 상징성은 대단히 뜻깊다. 그것은 41년 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쟁취, 회복을 위해 지휘부 역할을 했던 기자협회가, 오늘날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한국 언론의 정상화를 위한 기치를 높이 들겠다는 결의와 각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항쟁 기간 전국 언론인이 저항하자 언론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언론인 1000여명에 대한 대량 불법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언론악법 제정과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장악한 뒤,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권력의 나팔수가 된 어용언론 쪽에 막대한 경제적 특혜를 베풀었다. 전두환이 내란과정에서 언론 대학살을 자행한 것은 광주항쟁 기간 그가 전국적 언론 투쟁에 얼마나 경악했는지를 반증한다.
한국기자협회가 5월20일을 기자의 날로 정한 것은 해방 이후 무수히 진행된 언론투쟁에 대한 상징성과 그 의미에 대한 심도 깊은 조사결과이다. 광주항쟁 기간 광주·전남 일원을 제외하고 신군부에 정면 저항한 세력은 전국 언론인이 유일했던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1980년 언론투쟁은 광주항쟁 기간 언론인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한 것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죄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내란과정에서 자행된 범죄로 판결이 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기자의 날이 정해져 기념되고 있는 것은 언론의 역사에서 80년 투쟁이 제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크다 하겠다.
그러나 광주 항쟁 41주년이 된 오늘날까지 1980년 5월의 광주항쟁과 언론투쟁은 하나가 되지 못했다. 이는 광주항쟁을 지역항쟁으로 축소, 왜곡하려 한 전두환 일당과 그 동조세력의 공작 결과였다. 1995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법 시행 대상에서 ‘해직’이 빠져 있는데 이는 4·3특별법, 부마항쟁법 등 여타의 모든 민주화법에 해직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법적 형평성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광주항쟁에 언론투쟁이 포함되는 것은 ‘역사 바로 세우기’이고, 이는 미래 세대에게 남겨할 오늘날 세대의 책무다. 최근 국회에서 80년 언론투쟁에 대해 법률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에 항의해 감행된 검열 및 제작 거부 투쟁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요한 징표의 하나다. 이를 통해 근현대에서 유일무이하게 내란 과정에서 군홧발에 짓밟힌 언론 역사 바로 잡기와 제4부의 위상 확립이 이뤄질 수 있는 추동력이 강화될 것이다.
기자의 날은 몇 가지 점에서 그 의미가 중차대하다. 첫째 근현대 역사 바로 잡기, 둘째 언론의 헌법적 위상인 제4부의 책무 의식 확립, 셋째 언론 역사의 정립이다. 먼저 1980년 5월 언론투쟁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제4부적 위상을 회복해 국민에 대한 알릴 의무의 자세를 확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김해야 할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이는 해방 이후 정치권력이 언론의 위상을 계속 훼손하고 파괴하는 작태를 벌여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즉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공간을 축소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 박정희, 전두환은 언론을 탄압과 공작대상으로 삼아 짓밟았다. 박정희는 18년 동안의 독재 속에서 언론을 악명 높은 긴급조치, 유신헌법 등으로 탄압하다가 이에 저항한 동아, 조선 기자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한편 노태우는 한겨레신문 창간 운동에 놀라 종이신문을 대거 등장하게 만들어 종이신문이 자립하기 어려운 출혈 경쟁 상황으로 신문시장을 교란시켜 자본의 지배를 강화시켰다.
이명박은 종편채널을 대량 허가하고 특혜를 베풀면서 방송시장에서 광고쟁탈전이 벌어지게 만들어 공영방송의 입지를 축소시켰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역대 부도덕한 정권은 그 방법을 달리한 언론 파괴 공작 수법을 개발했는바 그것은 정권의 직접 탄압에서, 자본에 의한 지배를 상대적으로 더욱 강화시켜 제4부인 언론의 위상을 정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악행으로 이어졌다.
광주 항쟁 발생이후 41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5·18 당시 계엄군에 발포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헬기 사격을 가했는지 등 이 아직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전두환은 지난 5월10일 광주지법 법정동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5·18 당사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첫 재판에 불출석해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 파렴치한 모습을 반복했다.
오늘의 현실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는 점에서 언론은 5월 항쟁 정신을 실천하면서 남북평화 통일, 민주주의 진정한 발전이라는 중차대한 과제에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은 동시에 80년 광주항쟁과 언론투쟁에 대한 정신을 되새기면서 진정한 제4부의 역할을 완성하기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