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논문 한 편이 미국 학계와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그가 최근 ‘태평양전쟁 당시 성 계약’이란 논문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 범죄의 피해자가 아닌 ‘계약 매춘부’로 묘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일본 극우 인사가 아닌, 미국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대학의 교수가 역사와 기존의 학문적 성과를 부정하는 주장을 논문으로 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일본 전범 기업이 댄 돈으로 교수직에 오르고,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향한 분노와 비난은 더욱 커졌다.
그렇게 얼마간 끓어오르다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 사안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뒷심’을 받는 모양새다. 미국 학자들이 램지어의 학문적 ‘도발’을 학문적으로 ‘응징’하고 나서면서 잠잠하던 미국 언론이 이를 조명하기 시작했고, 우리 정부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이제 ‘램지어 논문 논란’은 ‘램지어 사태’로 불리고 있다. 여기엔 하버드 한인 학생들, 한국계 미국 교수들의 역할도 컸겠지만, 워싱턴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기사를 밀고 끌며 이슈를 키워온 특파원들의 공도 있을 것이다.
하버드 교수가 뭔 헛소리를 했나보다, 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김수형 SBS 워싱턴 특파원은 반일(反日) 정서에 기대지 않고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며 램지어의 논문이 동료 학자들에 의해 논박되어가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해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 교수들을 직접 취재해 램지어 논문의 무엇이, 왜, 어떻게 문제인지 짚고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살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한 단독 보도만 해도 여럿이다. 페이스북에도 취재 기록을 꼼꼼히 남기는데, 지난달 27일 등록한 글은 900회 가까이(12일 기준) 공유되기도 했다. 댓글 중에는 “이 이슈가 감정적 선동이 아니라 학문적 논쟁이 되게끔 하는데 크게 기여하셨다”는 평도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 사안을 깊게 파고든 건 아니다. “별 황당한 교수가 다 있네.” 그의 첫 반응이었다. “워싱턴 특파원들이 하는 통상적인 취재가 있거든요. 외교·안보라던가, 트럼프가 막 퇴임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시점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취재하는 게 통상적인 일이죠. 이건 단발성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처음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끝이 없었다. “고구마 줄기를 캐는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게 아주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이 왔죠. 단순히 일회성으로 보도할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국 학자들이 논리적으로 경합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도 기록을 꼼꼼히 남기는 게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미국 학계 주요 인사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쉽진 않았다. “이게 독특한 사안인 게, 미국 언론이 전혀 다루지 않았거든요. 사실 워싱턴 특파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관련 취재원을 깊숙이 접촉하며 한국처럼 취재하기 물리적 어려움이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한국 뉴스 제작에 맞춰) 낮과 밤이 바뀌어 돌아가다 보니 한 사안을 파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이 사안을 미국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으니까 도움받을 데가 없더라고요.”
한국에서야 SBS가 유력 매체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름 모를 외국 언론 중 하나일 뿐이다. 취재 요청도 이메일을 너덧 번은 주고받아야 겨우 성사되곤 했다. 다행히 “이 사안이 부당하고 잘못됐다고 느끼는 학자들, 발언하고 싶은 의사를 가진 학자들”이 그의 요청에 응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전달했다. 결국, 미국 경제학자들이 논문 철회를 요구하며 연판장을 돌리기 시작했고, 여기엔 내로라하는 일본학, 경제학 전공 학자들까지 줄지어 참여했다. “내부에서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풀거나 ‘일본 돈 받고 하는 애들이야’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이슈를 왜 문제고 어떻게 왜곡했는지 하나하나씩 다 지적한 거죠. 그 과정을 기록하고 그런 분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면서 이 사안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국계 미국 교수들의 역할이 컸다. 동료 학자들을 만나 설명하고 설득하며 온 힘을 다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연결하고 확산시키며, 김 특파원도 덩달아 응원을 받았다. “한국언론과 주류 매체에서 계속 관심을 갖고 보도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일본 극우 주장을 미국 학계에 이식하려던 시도, 동료 학자들이 ‘응징’
미국 언론도 뒤늦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석지영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지난달 26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이 결정적이었다. 석 교수는 동료 교수이기도 한 램지어를 직접 인터뷰해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가 쓴 매춘 계약서가 없다는 사실을 실토했다고 폭로했다. “하버드대 교수가 간단히 논문만 쓴 정도가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역사를 전면적으로 왜곡·부정하는 일본 극우 인사들의 주장을 미국 학계에 그대로 들어오려고 했던 거란 걸 미국 언론도 알게 된 거죠. 미국에서도 뒤늦게 불이 좀 붙었습니다.”
김 특파원은 램지어가 과거에 쓴 논문들을 찾아 한국과 관련된 잘못된 기술들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워싱턴 특파원을 하면서 기사도 많이 보고 싱크탱크에서 나온 보고서도 봤지만, 이렇게 논문을 많이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며 웃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한국인으로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뭔가”와 “약간의 오기”도 있었다. 2분 남짓 방송 리포트에 다 담지 못한 내용은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기고, 이걸 정리해서 취재파일이나 월드리포트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는 “리포트를 보고 궁금증을 느낀 분들이 앞뒤 전체적 맥락을 보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해서 기자로서 보람 있고 좋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사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램지어 논문을 학술지에 싣기로 한 출판사가 램지어 교수에게 이달 말까지 소명할 시간을 줬고, 그에 대해 램지어가 어떤 논리로 그동안 제기된 비판에 대해 해명할지, 논문이 사후에라도 철회될 가능성이 있는 지도 관심사다. 김 특파원은 “이 사안이 어떻게 정리되고, 학문을 사용해 정치행위를 한 사람이 어떻게 퇴출당하는지 그 과정도 굉장히 중요한 기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우리 안으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는 램지어 논문의 진실성에 분노하는 미국 교수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반성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했다. “그들의 학문적 공방을 보면서 충격받은 게요, 우리 중에도 위안부나 역사 왜곡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그게 아냐, 가만 안 둬, 수사받아볼래?’ 이렇게 감정적 대응을 하고 정작 그 내용의 문제는 잘 못 들여다봤는데, 미국 교수들은 논문에 인용된 출처를 다 추적해서 실체가 없다, 계약서가 어디 있냐, 인용했다면서 왜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비틀어서 왜곡해 놨냐고 따지는 식이에요.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던 거죠.”
그는 “우리 학계도 충분히 역량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 기사 쓰면서 그런 댓글들을 많이 봤어요. ‘저렇게 학문적으로 말도 안 되는 도발을 할 때는 학문적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구나’ 사실 우리 학계도 충분히 역량이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사안에 대응해왔다고 한다면, 이젠 우리 학계에서 쌓아놓은 연구성과를 잘 활용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학자가 나타날 때 학문적 대응으로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는 걸 내부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