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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메인뉴스 오른쪽 아래… '작은 거인' 수어통역사

'농인에게 어떻게 뉴스 잘 전할까'… 끝없이 고민하는 지상파 수어통역사

박지은 기자  2020.12.09 14: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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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인에게 뉴스 속 수어 통역사는 앵커나 마찬가지예요. 저희 수어 통역사들 이름은 아는데 앵커들의 이름,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경우도 있죠. 수어 통역을 통해 뉴스를 농아인들에게 제공하는 중간 다리 역할인 만큼 귀한 자리라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모상근 MBC 뉴스데스크 수어 통역사)


지난 8월31일 MBC를 시작으로 KBS, SBS 등 지상파 3사가 자사 메인뉴스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8070 아침과 낮 뉴스, 뉴스 특보 등에서 수어를 제공해왔던 방송사들은 그전까지 메인뉴스를 자막으로 처리했다. 비장애인들의 언어 체계와 완전히 다른 ‘한국 수어’가 모국어인 청각 장애인들은 뉴스 정보 습득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상파 3사가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한지 약 3개월이 지났다. 모상근(왼쪽부터), 한현심, 이민호 수어 통역사는 각각 MBC 뉴스데스크, KBS 뉴스9, SBS 8뉴스의 수어 통역을 맡고 있다.

방송 화면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지만 수어 통역사의 존재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소중한 창구다. “역사적인 일”, “살아있을 때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한 일”이라는 표현이 수어 통역사 사이에서 나올 정도로 이번 변화는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상파 3사가 메인뉴스에 수어 통역을 제공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 기자협회보가 만난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의 수어 통역사들은 농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뉴스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를 담당하고 있는 수어 통역사는 KBS 2명, MBC 3명, SBS 2명이다. 방송이 있는 날이면 뉴스 시작 1시간 전쯤 방송사에 도착해 뉴스 원고를 읽고 중요한 기사와 통계 숫자, 명칭 등을 확인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60~90분 정도의 뉴스 원고 분량은 30페이지 책 한 권 정도. 방송 시작 20~30분 전에야 원고가 완성돼 다 읽어보는 것도 빠듯하다. 방송 시작 10~15분 전에는 스튜디오로 이동해 인이어를 꼽고 뉴스 속 목소리를 들으며 수어 통역을 진행한다.


메인뉴스를 맡고 있다는 “긍정적인 부담감”도 상당하다. 식곤증을 막기 위해 식사량도 조절하고, 화장실 문제로 커피나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 방송이 없는 날에도 계속해서 뉴스를 접하고, 중요 사안 중 수어에 없는 신조어를 어떻게 전달할지 연구하는 등 공부를 쉬지 않는다. 통역에 집중하기 위해 리포트가 나가는 중간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앵커의 예독, 스텝 목소리 등 외부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는 인이어를 사비로 구비하는 열정도 보인 통역사도 있었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수어 통역 제공이 대다수 농아인들의 염원이었던 만큼 수어 통역 방송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 기대감이 수어 통역사들에게는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한현심 수어통역사는 “KBS 뉴스9 수어통역이 제공된 첫날 방송을 했는데 부담감이 정말 커서 방송 전까지 잠을 못 잘 정도로 긴장하기도 했다”며 “뉴스9 방송 이후 수어 통역 화면 밝기부터 다양한 의견의 피드백이 나올 정도로 농아인들의 관심이 많았다. 그 이후로 방송 환경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앵커부터 시작해 기자 리포트, 시민 인터뷰, 기상 캐스터의 날씨 예보까지 뉴스가 진행되는 내내 모든 목소리를 쉬지 않고 통역하는 만큼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모상근 통역사는 “1시간 반 동안 계속 팔과 손을 움직이고 있으니 뉴스가 끝나고 앵커분들이 팔은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한다”며 “오래 대화해도 혀가 아프지 않듯 수어 통역사들에게는 팔이 혀니까 아프진 않았지만, 오래 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조금 뻣뻣하긴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낮 뉴스에서 잘 다루지 않던 스포츠 코너 통역은 수어 통역사들에게 새로운 경험이다. SBS 8뉴스를 담당하는 이민호 수어 통역사는 “스포츠 뉴스의 경우 종목별 용어들이 워낙 다양하다. 해당 용어들이 수어에 없어 보통 지화(스펠링)를 사용하여 일일이 써주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의역하고 있다”며 “해당 스포츠를 즐기는 농아인을 수소문해 용어 관련 수어를 여쭤 몇몇 용어들의 수어를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에 맞춰 만든 게 아닌, 아예 다른 시각언어 체계에서 만든 언어다. 결국, 한국어-한국 수어 통역은 애초에 직역이라는 건 없는, 의미 중심의 통역이라고 수어 통역사들은 설명한다. 이들이 뉴스를 수어 통역하며 가장 고민이 드는 지점도 제한된 시간 안에 뉴스 내용의 의미를 최대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민호 수어 통역사는 “수어 통역사로서 가장 난감한 질문이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통역하냐는 것”이라며 “방송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에게 정보를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다보니 가급적 다수의 사람이 가장 쉽게 해당 뉴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현심 수어통역사는 “한국어는 한자의 의미가 많아 수어로 통역할 때 그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데 한국어와 수어의 길이가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국어는 짧은데 수어의 길이는 길어지거나 반대로 한국어는 긴데 수어는 짧아지기도 한다”며 “신조어의 경우 통역사마다 다르게 표현되어 지고 있으며 바라보는 농아인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량을 쏟아내는 뉴스를 통역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아직은 풀어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