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이나 유명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 흔히 쓰이는 용어 중 하나가 ‘베르테르 효과’다. 유명인의 자살 이후 자살자가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했다.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지 못해 권총 자살하자 당시 주인공을 모방해 자살을 시도하는 독자들이 늘어난 데서 이 용어가 파생했다.
베르테르 효과보다 덜 알려졌지만 ‘파파게노 효과’라는 용어도 있다. 파파게노는 <마술피리>의 등장인물로, 자신이 사랑한 파파게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또 다른 대처 방안을 알려준 세 명의 소년들로 인해 자살을 포기하는 인물이다. 언론이 자살 관련 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파파게노 효과가 쓰이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을 내용을 또 한 번 언급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살 보도가 또 다른 자살을 야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굳이 특정 연구 결과를 들고 오지 않더라도 이미 유명인과 관련한 자살 보도가 시민들의 자살충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충분히 입증됐다. 가장 최근의 자료만 하더라도 지난 9월22일 보건복지부의 ‘2019년 사망원인통계 중 자살 관련 설명’을 들고 올 수 있다.
복지부는 이 자료에서 “전년 대비 자살사망자 수가 소폭 증가했다”며 “주된 요인을 어느 하나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자살 사망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아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과 11월 극단적 선택을 한 가수 겸 배우 설리씨와 가수 구하라씨의 이야기다. 당시 언론은 선정적인 자살 보도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자살자가 증가한 데 언론의 영향이 없을 거라 말하기 민망한 이유다.
지난 2일 방송인 박지선씨의 죽음 이후에도 언론은 또 한 번 독자들을 실망시켰다. 조선일보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 최대한 자제하라고 권고했던 고인의 유서를 ‘단독’을 달아 보도했고, 헬스조선 파이낸셜뉴스 중앙일보 데일리안 등은 자살의 동기를 특정해 <00 질환 뭐길래?>와 같은 기사를 쏟아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고인의 지인이 슬퍼하는 영상을 확대 재생산하거나, 연예인의 SNS 추모 글을 건건이 퍼 날라 기사로 쓰는 언론사도 적지 않았다.
다만 언론의 자살 보도는 예전보단 상당히 나아졌다. 특정 언론의 일탈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자살 현장 사진은 물론 자살 도구의 가격과 판매처까지 공개하고, 빈소에서 슬퍼하는 동료 연예인의 사진을 여과 없이 보도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이 같은 기사가 거의 사라졌다. 기사 하단에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안내하는 문화도 완전히 정착해 이젠 그렇지 않은 기사를 찾는 것이 힘들어졌다.
기사 수도 예전보다 줄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고 설리씨, 구하라씨, 박지선씨의 사망 시점부터 9일간 뉴스 보도 수를 집계하면 설리씨의 경우 1486건, 구하라씨의 경우 809건이었던 보도 수가 박지선씨의 경우 565건(10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줄어들었다. 구하라씨에 비교하면 딱 30% 개선됐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순 없다. 부고 기사를 제외한 불필요한 자살 기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언론의 목표가 돼야 한다. 그동안 언론은 기사로써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자살을 보도했다. 유명인이 당사자이면 인물의 사회적 인지도 때문에 기사 가치가 있다 생각했고, 일반 시민의 경우 사회적 맥락 때문에 기사화를 했다. 그러나 죽음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거나, 정책적으로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야 할 사안이 아니라면 한 사람의 죽음, 그것도 자살을 언론이 그렇게 많이 반복·재생산할 필요는 없다. 필연적이라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 기사를 들여다보면 독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내용인 데다 언론사의 탐욕이 깃들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알리기 위해 만든 유튜브 영상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자살 보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릅니다. 잘못된 자살 보도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살 보도 방식을 바꾸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기사 가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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