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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시 한국에 갈 겁니다"…바이든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박성호 MBC 워싱턴특파원의 2020 미국 대선 취재기

박성호 MBC 워싱턴 특파원  2020.11.10 19: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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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의 막이 오른 지난 2월3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하이어트 중학교 체육관 앞에서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박성호 MBC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기자입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자신 있으신가요?” 조 바이든에게 내가 물었다. 연설을 마친 그는 몰려든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고 손을 잡아줬다. 대답 없이 발걸음을 떼나 싶더니 몸을 홱 틀어 답했다. “나는 다시 한국에 갈 것입니다. 여러 번 가봤습니다.” 지난 2월3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하이어트 중학교 체육관,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첫 관문인 코커스(당원대회) 현장이었다. 대통령이 되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바이든의 그날 성적은 대의원 15.6% 확보로 4위. 굴욕이었다.

팬데믹 시대, 후보 ‘대면 취재’ 없는 선거

2월11일 뉴햄프셔는 뼈가 시릴 만큼 추웠다. 경선 두 번째 라운드에서 바이든은 5위로 추락했다. 서울 국제부에서는 바이든의 몰락 아니냐고 묻기에 그렇게 보기엔 성급하다고 답해줬다. 당시 앞서 나가던 부티지지와 샌더스 후보측 캠프 사람들을 현장에서 만나보니, 흑인 표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바이든의 역전을 다들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이든 캠프의 운동원 중에는 평생 공화당만 찍다가 갈아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호텔 매니지먼트 일을 하는 쉬린 쿠로스씨가 대표적인데, 그녀의 소개로 접한 트럼프 낙선을 위한 공화당원 모임(‘링컨 프로젝트’)은 온라인과 TV에서 맹활약했다. 대대적인 광고전으로 바이든을 밀었다.


대선 취재는 코로나에 묻혔고, 코로나에 묶였다. 8월20일 전당대회에서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로 공식 선출되는 현장에 가볼 수 없었다.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2차 정점을 기록하면서 출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은 온라인 유세를 선호했고, 야외에서 해도 소규모로 ‘드라이브 인’ 방식을 택했다. 미국 대선 취재를 한다면서 후보 얼굴 한번 못 보고 끝나나 싶어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지난 5일 바이든 후보가 거주지인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당선 확정 소식을 기다린다고 해 그곳으로 내달렸다. 예전처럼 다가가 인터뷰할 마지막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마침 바이든이 시내의 한 극장에 나와 코로나 관련 브리핑을 듣는다기에 그곳 앞에 가서 기다렸다. 하지만 비밀경호국 소속 차량과 요원들이 건물 앞을 가득 메웠고, 취재진은 길 건너편으로 밀려났다. 이미 경호의 수준이 달라졌다. 그나마 그가 건물에서 나오는 장면을 배경으로 ‘스탠드업’을 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연방항공청의 비행금지 구역 좌표를 통해 그의 집 위치도 파악했지만, 진입로부터 통제돼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국이 정상 되찾게 됐다”…“누가 트럼프처럼 우릴 대변했나”

사흘 만에 돌아와 보니 미국의 수도는 취해 있었다. 바이든의 당선 소식이 전해지자 워싱턴DC는 ‘그날이 오면’만 손꼽아 기다리던 ‘해방’의 도가니였다. 지난 여름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구호 속에 긴장이 흐르던 백악관 뒤편, 최루탄을 피하고 성난 군중의 불길을 피해 취재했던 그곳이 맞나 싶었다.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음악이 흘러 넘쳤으며, 흑인, 히스패닉, 성소수자 그룹들의 깃발이 나부꼈다. 미국이 정상을 되찾게 됐다는 시민들의 말은 격하지 않았다. 온몸에 성조기를 휘감은 마이클 라이언씨는 “예의와 품위, 진실이 회복되는 시대가 조 바이든이라는 이름으로 왔다. 민주당원이라면 이제 공화당원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 하나가 돼야 할 때”라고 했고, 나탈리라는 여성은 “트럼프라는 정신적 바이러스로부터 치유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패배한 쪽이 선뜻 그 손을 잡을 수 있을까. 10월 말 찾아갔던 펜실베이니아주 남서쪽의 시골 마을 마틴스버그에 갔을 때, 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유소 사거리가 다운타운의 전부였고 큰길가에도 버젓이 폐가가 서 있는 마을, 거기서 농사만 몇 대째 지어온 로버트 그린리프씨는 “나같은 백인에게 무슨 특권이 있나. 미국에서 진정한 소수이며 이제까지 잊힌 존재였던 우리 마을 사람들을 어느 대통령이 이렇게 대변했나”라고 했다. 코로나 대응에 이러쿵저러쿵하는 바이든에 대해서는 결과 나온 다음에 전문가 행세한다는 의미의 ‘먼데이 모닝 쿼터백’(Monday morning quarterback)이라고 불렀다.

그보다 한 주 먼저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가서 만난 스콧이란 백인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다른 주에서는 폭력과 약탈이 횡행했지만, 여기선 ‘리틀 트럼프’를 주지사로 뽑아놨더니 거리가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했다. 그는 좀 냉정한 편이었는데, 트럼프가 패배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앞으로 4년은 암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냉소했다.

분열과 갈등이 민주주의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 심각성은 이번에 미국인들 스스로 보여줬다. 선거일이 임박해지자 워싱턴DC의 사무실 주변은 인종차별 항의시위 때처럼 폭동과 약탈에 대비해 온통 가림막을 건물 창문과 벽면에 세웠다. 씁쓸했다.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해가 필요한데, 해밀턴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68호에 적었던 그 도입 취지를 들춰보면서 새삼 씁쓸해졌다. “가능한 한 소란과 무질서의 가능성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것도 우리가 바라는 바이다…(선거인단을 통한 선출은) 쓸데없는 열기나 동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나라 선거를 어떻게 설명할까

11월3일 선거 당일은 나에게도 긴장되는 날이었다. 7시간 생방송으로 편성된 뉴스특보에 8번 참여해 개표 상황을 전달했다. 그동안 여론조사 흐름도 꼼꼼히 챙겼고, 사상 최고의 우편투표율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개표가 진행되고는 혼돈의 연속이었다. 다시 녹화본을 보니 그때그때 엎치락뒤치락하는 판세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흔들린 감이 없지 않다. 예상했던 것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반에 강세를 보이고, 다시 바이든이 맹추격하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보다 보니 특보 끝나고서야 화장실에 처음 갔다. 


이런 식의 뉴스 특보는 사실 준비하는 데에 고민이 따른다. 연초부터 후보별·이슈별로 자료를 수집해 분류하고, 3개월 전부터는 격전지마다 별도로 파일을 만들어 판세와 지역적 특성, 유권자 구성 등을 기록해 두긴 했다. 아는 게 짧아 시험공부 하듯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전달이다. 나조차도 특파원 오기 전엔 ‘경합주’, ‘선벨트’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상당수 주는 위치도 몰랐다. 사안에 관심이 덜한 국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려면 ‘맥락’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경마식 상황 중계는 어차피 CNN 중계를 동시통역으로 전달할 테니, 의미와 배경을 짚으려 했다. 텍사스에 지난 4년 사이 유입 인구의 구성 변화를 데이터로 제시하거나, 플로리다의 지역별 표심 차이는 현장 취재 내용을 곁들여 설명했다.

시각적인 보조 장치도 물론 필요했다. 미국 지도를 보여주는 배경 장치는 기본이고, 해당 지역을 언급할 때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그래픽이 표출되도록 사전 제작했다. 오하이오주를 설명하는 순간에는 <격전지 오하이오/ 이곳 지면 공화당 후보는 낙선…‘오하이오 징크스’> 같은 그래픽이 나오는 식이었는데 전에 없는 시도였다.

이번 대선 취재에서 ‘노구’를 이끌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며 사회부로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 25년차에게 무슨 소리냐며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꿈이었다. 3시간 반 정도 잤을까. 지난 3주 동안 하루 수면 시간으로는 가장 길었다. ‘바이든 승리 연설’ 리포트를 한국의 저녁뉴스 용으로 보내고 잠이 들었던 게다. 퇴근길은 해가 중천이었다. 컨스티튜션 애비뉴에서 신호가 걸려 오른쪽의 백악관을 쳐다봤다. 시위대를 막는다며 세운 펜스가 열렸고, 그 뒤로 푸른 잔디 위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라디오에는 올맨브라더스 밴드의 ‘부활’(Revival)이 흘러 나왔다. 이 나라는 부활할 것인가, 묻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