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목요일. 서울 정동길에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으로 10명 남짓한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같은 시각 온라인으로 연결된 ‘비대면 강의실’에는 그보다 너덧 배 많은 기자가 모였다. ‘젠더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런치 클래스’가 열리는 현장이었다. 3회차까지 진행된 교육 참가자는 온-오프라인을 합해 연인원 150여명. 부산일보에서는 매주 기자들이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단체로 강의를 들었는데, 지난달 29일 마지막 강의 때는 인턴 기자부터 국장급, 논설실에서까지 20명이 넘게 참여했다고 한다. 그만큼 젠더 이슈의 중요성이 커지고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게 뉴스룸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방증이겠다.
어디 언론뿐일까. 트렌드에 민감한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 그런데 포털 뉴스를 보면 한숨부터 나올 때가 많다. 여전히 성차별 기사가 성평등 기사보다 월등히 많고(서울YWCA), 젠더 갈등을 부추기거나 여성 연예인의 ‘노브라’ 차림을 ‘논란’이랍시고 보도하는 사례를 흔히 접한다. 심지어 성인지를 ‘성인잡지’로 알고 쓴 기사도 있다(실화다!). ‘남의사’, ‘남검사’라는 말은 쓰지 않으면서 ‘여의사’, ‘여검사’는 자주 쓰고, 같은 스포츠 선수라도 여성이면 ‘황제’ 대신 ‘여제’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성을 ‘디폴트값’으로 놓고 여성을 구별 짓는 방식이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까칠하고 불편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성차별이나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라면 “쟤 앞에선 말조심해야 한다”며 경계하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프로불편러’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부여하고 보직을 준 것이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지난해 5월 국내 언론사 최초로 젠더데스크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지난 4월까지 1년간 젠더데스크로 일했던 임지선 기자는 그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털어놨다. 젠더데스크로서 그의 업무는 기사 제목의 성차별 표현을 바꾸는 일부터 인사 문제에 대한 제안까지 범위를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활동은 ‘젠더의 기록’이라는 파일명의 스프레드시트에 고스란히 담겼다. 단맛보다는 쓴맛, 성과보다는 실패와 시행착오로 점철된 기록이라고 임 기자는 말했다.
충격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낀 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평가하는 특집 기사가 실렸을 때다. 당시 한겨레는 정치·외교·노동 등 분야별 정책을 평가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로 2개 지면을 채웠는데, 지면에 등장한 12명의 전문가 전원이 남성이었다. 충격을 받은 임 기자는 회사 전체에 메일을 보내 ‘여성 전문가 취재원 DB 구축’을 제안했다. 많은 이들이 호응하며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여성 전문가의 연락처를 보내왔다. 공유 파일로 만들어진 이 리스트는 지금도 계속해서 업데이트 중이다.
임 기자는 여성 취재원 DB를 제안하며 쓴 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는 1명으로부터 시작할 겁니다.” 1명만이 아니었다. 동지(同志)는 어디에나 있었다. 젠더 보도와 뉴스룸 문화의 변화를 고민하고 갈망하며 교육에 참여한 기자들도 그 일부일 것이다. 부산일보 여기자회장을 맡은 윤여진 기자는 지난해부터 성평등 보도와 관련해 자체 교육 등을 진행하면서 한겨레를 벤치마킹한 젠더 전담 조직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윤 기자는 “젠더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며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확성기 전법’을 권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를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내 편’을 확대하며 영향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높은 젠더 감수성이 요구될수록 뉴스룸 안팎에서 ‘백래시’가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요즘, 변화와 연대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확성기를 통해 더 많이 들려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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