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호 YTN 글로벌센터 기획팀장 2020.09.24 13:19:19
기자협회보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당시 YTN은 회원 수가 연합뉴스, KBS 다음으로 많은데도 기자협회 활동은 미미했다. 한마디로 회비만 내는 회원사였다. 지회장을 하는 동안 우리도 위상에 걸맞게 협회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마침 YTN에서 편집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는데, 막상 참여하려니 다들 바빠서 적임자를 구하지 못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회장을 막 끝낸 내가 편집위원을 맡았다. 적극 참여를 주장한 장본인이었으니 어찌보면 자초한 일이었다.
당시 기자협회보 편집국장은 편집위원 활동에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매주 편집회의 참석해서 다음주 편집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자기 회사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보충 설명을 하는 정도라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약간은 사기당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 사에 취재가 잘 안될 때는 편집위원에게 보충 취재를 부탁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사내인사 섭외를 떠맡은 적도 있었다. 적은 인력으로 빠듯하게 운영되는 협회보의 현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전략전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들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다. 매번 사설 격인 ‘우리의 주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고, 토론 후에 정작 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쓸 사람을 정할 때면 서로 눈치보면서 빠지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일단 자기에게 맡겨지면 기자로서의 자존심 탓인지 쪽팔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썼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는 의기투합해 즉석에서 좌담회를 열어 선거보도를 평가하기도 했다.

편집위원의 업보 중에 하나가 회사와 기자협회보 사이의 중간자 역할이다. 편집회의에서는 자기 회사 입장을 대변해 불만사항이나 의견을 전달하고, 자기 회사에 가서는 회사와 관련된 기사에 대해 협회보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이같은 이중간첩(?) 운명에 부담을 느낀 어떤 편집위원은 자신이 협회보 편집위원이라는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이건 뭐 홍길동도 아니고….
편집위원 참여는 개인적으로도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2006년 기자의 날 제정 기념 제1회 언론인마라톤대회가 열렸다. 편집위원은 의무 출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갔는데 실제 출전한 편집위원은 절반도 안됐다. 5km를 죽을 둥 살 둥 간신히 달렸다. 그때 내 자신의 체력에 자괴감을 느껴 마라톤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달리고 있다. 9년간 회사에서 쫓겨나 있을 때 내 몸과 정신을 버티게 해준 것이 달리기였다. 나를 달리게 만든 기자협회에 대한 보은(어찌보면 보복일 수도 있겠다) 차원에서 협회보 기자들에게도 달리기를 강요해 몇 사람을 완주시켰다. 아마 협회보 기자들에게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내가 올라 있으리라….
편집위원으로서의 인연을 제외하더라도 기자협회보에 무척 고마움을 갖고 있다. YTN은 9년간 아픔을 겪었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단 2가지. ‘명분’과 ‘여론’. 명분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여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약해져 갔다. 그 때 우리에게 큰 힘이 돼 준 존재가 기자협회보를 비롯해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PD저널, 오마이뉴스 등 많은 언론사였다. 비록 어느 기자의 말처럼 권력은 이들의 보도에 눈도 깜짝하지 않았지만, 권력과 싸우는 우리에게는 이들 언론의 기사 한줄 한줄이 그토록 고맙고 소중했다. 지금은 내가 기자협회보 편집위원이 아니고 한 사람의 독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기자협회보가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는 역할을 계속해주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