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콩쿠르는 부산 영도에 있던 이화고녀(이화고등여학교, 현 이화여고) 흙바닥 교실에서 열렸다. 그때 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버지는 누런 경향신문에서 콩쿠르 공고가 나온 걸 보시고는 참가 신청서를 내셨다. 참가자는 대부분 서울에서 피란 온 학생들이었고 지방 출신은 나를 포함해 극히 드물었다. 나는 비가 온 뒤 진흙으로 변한 땅을 밟고 이화여고 교사인 텐트 속에서 피아노를 쳤다. 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와 멘델스존의 ‘뱃노래’를 쳤는데 그때 받은 은수저 2벌(2등 수상)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007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1952년 열린 제1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 대목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피난지 부산에서 시작된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올해 69회를 맞았다. 콩쿠르 역대 입상자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장한나 등이 있는데 모두 세계적 연주자들로 성장했다. 경향신문 문화사업국 관계자는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클래식 콩쿠르”라며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이화여고와 경향신문이 국내 음악계를 이끌어갈 예비 음악인을 발굴하고 사회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개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등 여러 언론사에서는 매년 예술 콩쿠르를 개최하고 있다. 언론사 콩쿠르는 한국의 문화예술 역사와 함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현재까지 예술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자리하면서 권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동아일보는 클래식 음악, 무용, 국악 등 언론사 중 가장 많은 분야에서 콩쿠르를 개최하고 있다. 1961년 동아음악콩쿠르가 창설됐고, 1964년 한국 최초의 연극상인 동아연극상과 동아무용콩쿠르가 시작됐다. 1985년에는 동아국악콩쿠르를 개최했고, 1997년부터 국내 최초의 국제음악콩쿠르인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열고 있다. 해당 콩쿠르들을 통해 발레리나 김주원, 박세은, 지휘자 임헌정 등 세계적 예술가들이 배출됐다.
중앙일보는 1975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당시 TBC와 함께 중앙음악콩쿠르를 제정했다. 성악가 조수미가 중앙음악콩쿠르가 배출한 대표적인 음악가다. 특히 동아음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 부문별 1등 수상자에게 병역 특례 특전이 주어지기도 했다. 해당 특전은 2009년 1월 병역법 개정안이 시행돼 없어졌지만, 특전이 주어졌던 당시 콩쿠르에 여러 차례 낙방한 ‘콩쿠르 낭인’들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KBS는 1990년부터 KBS국악대경연을, 1991년엔 서울신인음악콩쿠르를 시작으로, 1994년부터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KBS한전음악콩쿠르를 매년 열고 있다. 이들 콩쿠르는 현악, 관악, 성악, 무용 등 각 부문 금상을 차지한 경연자들을 대상으로 따로 콘서트 형식의 대상선정 음악회를 연다. KBS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 등으로 이뤄지는 대상선정 음악회는 음악 애호가들의 큰 축제이기도 하다.
해당 콩쿠르들이 예술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하면서 대회 경쟁률도 치열하다. 많게는 4차까지 예선과 본선으로 이뤄진 경연으로 입상한 수상자에게 상금, 연주기회 등의 특전이 제공된다. 이화·경향음악콩루르의 경우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성악 등 7개 부문으로 경연을 진행(성악 부문만 대학, 일반부 경연)하는데 매년 1000명 안팎이 참가한다. 7개 부문 입상 경쟁률은 평균 20대 1 정도다.
왜 언론사를 중심으로 예술 콩쿠르들이 생겨났을까. 중앙음악콩쿠르를 담당하고 있는 이소정 중앙홀딩스 팀장은 “해외 왕래가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해외 공연을 한국에 들여오는 등의 문화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회사가 언론사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사들이 문화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 콩쿠르들도 열게 됐을 것”이라며 “콩쿠르 개최를 알리고, 저명한 심사위원을 섭외할 수 있었던 것도 언론사가 가진 장점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