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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보도의 최우선 고려사항 '피해자 권리침해 최소화'

경향 '박재동 미투 반박기사' 논란으로 본 성범죄 보도 윤리

김달아 기자  2020.08.26 14: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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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온라인에 출고된 이 기사는 2차 가해가 우려된다는 경향 구성원들의 문제제기로 4시간여 만에 삭제됐는데, 이를 두고 ‘피해자 중심주의를 앞세운 진실보도 탄압’이라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기사를 작성한 강진구 기자는 지난 14일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경향 인사위는 강 기자가 내부 ‘성범죄보도준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기사 삭제는 편집국장의 정당한 편집권 행사로 봤다. 기사 무단 전송, SNS 글 게시와 온라인 방송에 출연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평가도 징계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27일 재심이 예정돼 있다.



강 기자는 회사의 징계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사 삭제의 직접적 원인인 ‘성범죄보도준칙 위반’에 대해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는 징계 결과를 통보받은 이후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후배들이 기사의 어떤 부분을 문제 삼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국장은 ‘피해자 중심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성범죄보도준칙을 어겼다고 하는데, 무조건 피해자 편을 드는 게 말이 되나. 제 기사가 준칙의 어느 부분을 어겼는지, 왜 2차 가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경향신문 성범죄보도준칙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고 밝혔으나, 2012년 제정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강 기자가 발행인으로 이름을 올린 경향노보(362호, 2012년 10월30일)에는 ‘피해자를 더 생각하고, 피해자를 위하는’ 11가지 원칙과 함께 그 제정 배경이 실렸다.



한 달간 준칙TF에 참여했던 기자가 이때 경향노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초안은 기존 언론보도 준칙들과 전문자료, 해외 언론보도 가이드라인, 편집제작평의회 회의록 등을 참고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작성됐다. 이후 편집국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 작업을 거친 뒤 최종본이 나왔다. 이 기자는 노보에 “이번 성범죄보도준칙은 구성원들의 고민과 다짐들이 담긴 것이라 생각한다”며 “준칙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준칙 제정을) 단지 ‘보여주려 했다’고 비춰지지 않기를, 또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준칙 내용이 일부의 의견이 아니라 경향 구성원 대다수가 합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향 성범죄보도준칙에 비춰 논란의 기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원칙을 어겼거나 이에 부합하지 못한 부분이 드러난다. 준칙이 제정된 2012년은 미투 운동이 일기 전이었지만, 성폭력 대부분이 신체적·정신적 약자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미투를 포함한 성범죄보도 전반에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먼저 ‘가해수법과 피해사실 등에 대한 지나친 묘사와 자극적인 제목 등 선정적인 접근’ 조항을 어긴 것은 분명하다. 강 기자의 <박재동 화백 ‘치마 밑으로 손 넣은 사람에 또 주례 부탁하나’ 미투 반박> 기사에는 제목뿐 아니라 본문에도 피해 사실을 묘사하는 표현이 나온다. 강 기자는 “피해자가 (2018년 미투 당시) 스스로 이야기한 내용”이라며 “어느 정도의 성추행 피해가 있었기에 재차 주례를 부탁했다는 것인지, 독자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미투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기사를 통해 또 다시 피해 내용이 노출되고, 다른 매체와 SNS로 퍼져나가는 상황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강 기자는 “일부 선정적인 표현에 대한 지적은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도 ‘가짜 미투’ 의혹을 제기한 기사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강 기자는 “기자생활 28년간 통상적으로 해왔던 일을 한 것이다. 사안을 팔로우하던 중 보도 가치가 있는 새로운 사실(성추행을 당하고도 재차 주례 부탁)이 객관적인 증거로 확보돼 이를 기사화한 것”이라며 “피해자 의견도 충분히 들었다. 새로운 팩트가 있는데 2차 가해 우려로 보도하지 말라는 건 성범죄보도준칙을 사실보도 위에 군림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사의 구조만 살피면 통상적으로 쓰이는 기사 형식으로 보인다. 어떤 단체가 보도자료를 통해 제기한 의혹을 받아쓰고, 당사자의 입장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강 기자는 위계상황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강 기자는 기사 속 피해자와의 일문일답에서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그런 피해를 당하고도 택시 안에서 다시 주례를 부탁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데”라고 물었다. ‘성추행 당하고도 재차 주례 부탁→비상식적 행동→피해 진술 신빙성 의심 소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사를 쓴 것이다. 이는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이다. 강 기자가 ‘가짜 미투’의 핵심 증거로 언급한 ‘주례 재차 부탁’이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팀 활동가는 “성추행 피해를 당한 직후 ‘이건 성추행’이라고 단정 짓거나 바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피해자가 ‘그때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자책하다가 어느 순간 확신이 들 때 목소리를 내면 왜 지금에서야 말하느냐, 나쁜 의도나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며 “(박재동 사건은) 같은 업계에서 명예도 있고 따르는 이들 많고 평소 친하게 지내면서 주례를 부탁할 정도의 사람이어서 피해자가 당장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케이스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기사가 나오면서 2차, 3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가이드라인)’도 이 같은 주의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성폭력·성희롱이 낯선 사람에 의하여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보다 아는 관계에서 사회 경제적 지위, 권력관계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A4 5장 분량의 가이드라인은 저널리즘 차원에서 피해자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언론이 피해자의 편을 들어 보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사실에 한 발 더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논란의 ‘가짜미투 의혹’ 기사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 마치 확정된 진실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폭력은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임을 감안하여,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사실 확인 등 형식적인 객관주의를 경계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로 보도해야 한다 △관련 보도자료를 사용함에 있어 사실 확인을 거친다 등이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뉴스룸에서도 성별, 세대별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식 차가 두드러지는 상황이어서 성범죄 보도를 둘러싼 논쟁이 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자협회·여가부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했던 기협 소속 한 기자는 “미투 같은 성범죄 보도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이 정도 원칙은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당사자들에게 면구스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투를 반박하는 보도를 할 때는 더욱 정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장 뉴스룸 인식 차이를 좁히기까지는 어려움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