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20.07.22 14:59:04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과 성추행 혐의 피소가 언론에 여러 과제를 남기고 있다. ‘2차 가해성 발언’에 대한 단순 인용 및 반복 재생산, ‘피해자와 피해호소인’ 용어 사용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않은 언론사 성폭력 보도의 ‘형식적 객관주의’가 대표적이다. 특히 정파성의 자장 안에서 피해자의 입지가 한껏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언론 역시 내외에서 진통을 겪은 만큼 향후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언론의 가장 명확한 과실은 친여계 인사들이 고인에 대한 평을 내놓고 이를 받아쓰기한 보도가 나오며 발생했다. 정치인, 인플루언서가 SNS 계정에 쓴 내용이나 공식발언이 그대로 기사가 되며 2차 가해성 발언이 반복 재생산된 경우다. 일례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침실, 속옷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가능성” 발언은 다수 기성 매체를 통해 기사가 나왔다. 2차 가해에 대한 비판의 맥락이나 정치보도의 차원에서 이를 다룬 기사도 있었지만 상당수 기사는 SNS 발언을 ‘복붙’한 행태를 보였다.

일부 언론은 자사 보도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 발언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노컷뉴스는 지난 14일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의 문제적 발언을 비판한 <현직검사, “박원순과 팔짱, 성추행 자수한다”> 기사를 페이스북에 유통하며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추행이라니까! 젠더 감수성 침해! 빼애애애애~~~”라는 설명글을 달았다. 기사는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검사의 발언들이 재구성돼 기사 홍보의 문구가 된 것이다. 단순히 발언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2차 가해가 될 수 있었던 만큼 언론에 보다 신중한 태도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국면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언론계의 ‘형식적 객관주의’를 돌이켜 볼 지점도 있다. ‘피해호소인’과 ‘피해자’란 용어 사용 논란은 이를 드러내는 사례다. 여당이 ‘피해호소인’이란 용어를 고집하다 지탄받기 전 언론에선 이 같은 단어가 인용 차원을 넘어 기사제목 등에서 다수 사용됐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란 단정 대신 ‘피해를 호소한 사람’이란 객관적(?)인 표현을 선택한 결과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하는 상황인데도 이를 정쟁에 의한 ‘미투’로 보는 시각이 있었고, 이에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보도원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며 “영결식날 피해자의 고발 기자회견 생중계를 TV조선과 보수 유튜버 등이 했는데, 카메라가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굴 비췄는지, 피해자 옆에 어떤 매체가 있었는지를 돌이켜보면 암담하다”고 했다.
심석태 세명대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일각의) 가해자가 죽어 입장을 못 담기 때문에 피해자 목소리를 생중계하기 어렵다는 논리는 타당치 않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말로만 있다기보다 정황을 고려해 구성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라며 “안희정 전 지사가 구속돼서 입장을 못 담기 때문에 못 다룬다는 식으론 안하지 않나”라고 했다. 이어 “다만 성폭력 피해자의 기자회견은 관련 묘사 등으로 너무 센세이셔널 할 수 있기 때문에 라이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언론과 기자에도 당황스러운 일이었고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유력 진보 정치인의 죽음만으로도 큰 사건인데, 성추행 피소가 맞물렸고, 피해자 보호까지 고려돼야 했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오비추어리(부고기사)라는 게 분량이 있는 기사인데 특히 당시 시점엔 어떻게 평가할지가 어려웠다. 행적을 하나하나 녹이면 긍정적인 평가가 되는데, 피해자의 입지를 좁히게 되지 않나. 피해자가 기자회견도 하기 전이었고 관련 정보도 거의 없어 비판적으로 쓰기도 쉽지 않았다”며 “개인적으론 좀 나중에 썼으면 생각했는데, 곧장 나가는 관행상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특히 진보성향 매체에선 핵심 독자층과 젠더 이슈라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고려 사이에서 고심이 작지 않았다. 조직 내에선 세대 간 인식차도 드러났다. 예컨대 한겨레신문의 경우 지난 13일자 5면 <미투 이후에도...‘젠더’ 문제는 진보진영 주변부였다> 기사에서 “2030여성들은 (중략) 피해자에 대한 언급 없이 박 시장의 공적만 기리는 정치인들의 대응에 분노를 표했다”고 했지만 23면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기고 <“늘 부끄러움 안겨주던 ‘40년 친구’ 박원순을 기억한다”>가 실리며 내외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신문사 한 기자는 “정치성향을 떠나 현재 언론사 결정권자들 대부분이 586 남성이고 막말하는 진보 정치인, 지식인들과 실제로도, 심정적으로도 가깝지만 이게 언론 역할을 흔들어선 안되지 않나”라며 “간부들이 정말 시대 흐름을 읽고 있는지 의문이다. 더 면밀하게 저널리즘적 가치판단을 해야하는데 자성이 안 되고 있다. 한 세대가 가는 걸 이런 식으로 알아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