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기자 2020.06.23 08:58:11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학 PD의 사망은 청주방송의 일방적인 해고와 소송 방해 행위가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이재학 PD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이 인정되고, 청주방송 측에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재학 PD가 청주방송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과정에서 청주방송의 위법·부당행위가 있었다고 봤다.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재학 PD는 상급자 지시에 따라 업무를 했고 그 과정에서 청주방송의 다양한 행정 업무도 수행했다. 사용자가 지정한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에 맞춰 출퇴근을 한 점, 청주방송의 촬영 장비를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촬영·편집한 점, 고인이 14년간 계속해서 청주방송의 방송 제작 업무를 수행하고 그 이외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로기준법상 청주방송의 노동자로 인정됐다.
진상조사위는 기획제작국장의 프로그램 하차 통보가 사실상 청주방송이 고인을 해고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2018년 4월, 이재학 PD가 기획제작국 일일회의에서 인건비 증액을 요구하자 기획제작국장이 흥분하며 그 자리에서 고인에게 <아름다운 충북> 연출을 그만두라고 통보했고 편성제작국 팀장에게 연출을 대신할 외주업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했다. 며칠 뒤 기획제작국장은 이재학 PD에게 <쇼! 뮤직파워>도 손을 떼라고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학 PD와 청주방송 사이의 소송에서 청주방송의 위법 행위도 확인됐다. 이재학 PD는 해고 이후 함께 일하던 동료 세 명의 진술서를 청주지방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으나 당시 해당 사실을 알게 된 대표이사가 국장단이 참여하는 간부 회의에서 경위 파악을 지시하고, 청주방송 관계자들이 이들에 대한 진술 번복을 종용하고 진술서 작성에 대한 경위서 작성을 강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제작국장은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해 실제 이재학 PD가 근무한 사항과 전혀 다른 내용을 증언했다.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 측에 △이재학 PD에 대한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입장표명 △책임자 처벌 △고인 명예회복 △비정규직 고용구조·노동조건 개선 등을 담은 이행요구안을 제시했다.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의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53.8%에 달한다”며 “청주방송은 상시적·지속적 업무에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고유 업무 외의 과도한 업무를 부여했고 자회사와 불투명 거래를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해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에서 2004년부터 14년간 프리랜서로 일하며 동료들을 대표해 처우개선을 요구했지만,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고 지난 2월 스스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이번 진상조사는 지난 2월 60여개 언론·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대책위)의 요구로, 이재학 PD의 유가족 대표와 청주방송 대표이사, 대책위 대표, 언론노조 위원장 4자 회의를 통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 공개 합의한 결과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3월3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이재학 PD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CJB 청주방송 사내의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유가족 대표인 이재학 PD의 동생인 이대로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정성과 윤리가 근본이 돼야 할 방송사가 그것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수십년 동안 개인의 배를 채우는 것에만 급급해하고 사유화된 점이 절망스럽다”며 “이제 청주방송은 약속한 대로 형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조사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4자 진상조사 합의를 통해 조사 결과 발표는 4자가 공동으로 하게 돼 있었지만, 청주방송 사측이 결국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 사측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아직도 진정성이 의심된다”면서 “다만 지금까지 협상을 통해 사측은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 이행, 부당해고와 근로자성 인정 등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청주방송이 이행요구안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