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과 명석함을 갖추고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까지 있는 참 언론인이었습니다.”
안석배 조선일보 교육전문기자의 영면 소식을 듣고 고인과 가장 가까웠던 취재원이자 ‘형님’이 페북에 남긴 글입니다. 안석배 기자는 그랬습니다. 취재에 있어 치열함과 동시에 늘 균형감을 갖추었고, 동시에 따뜻함도 함께 했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아름드리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인품은 타고 난 동시에 본인의 노력으로 연마한 결과물일거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가 바로 옆에서 ‘인열아’라고 부를 것만 같습니다. 그 목소리가 생생히 귓전에 맴돕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 일도 많고, 즐길 일도 많았을 텐데 왜 그리 서둘렀는지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는 기자 생활의 가장 많은 부분을 교육기자로 보냈습니다. 5000만 온 국민이 전문가를 자처하는 교육 분야에서 그는 늘 사실과 함께 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열정과 진정성이 강했던 기자였습니다. 교육 관련 탁월했던 기사들과 칼럼은 물론이고 QS아시아 대학평가 도입 등은 그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입니다.

문상을 온 많은 인사들이 한결 같이 고인의 품성을 칭송합니다. “특종도 많이 쓰면서 취재원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늘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한 전직 장관은 “시류를 타지 않고 좋은 교육을 고민해 준 동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습니다. 한 회사 선배는 “안석배는 논설위원실 최고의 명 총무였다”고 하십니다. “최고의 미남이었다”고 하십니다. 회사 후배는 “화를 내는 걸 본 기억이 없는 선배”라고 합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후배는 “안 선배랑 일할 때가 가장 가슴 뛰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 모든 말들에 ‘안석배’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기막힌 상황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를 기억하는 시간도 짧아지겠죠. 하지만 그가 남긴 53년의 뜨거웠던 삶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안 선배 잊지 말아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했고, 사랑했습니다.
이인열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