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기자 2020.06.10 16:00:27
‘또… 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참변’, ‘실외기 달던 에어컨 설치기사 추락사’, ‘외주업체 노동자 또 ‘안타까운 죽음’’.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의 부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진다. 노동자의 죽음이 얼마나 흔한 것인지, 이를 전하는 기사 제목에는 ‘또’라는 부사가 단골처럼 붙는다. 이렇게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이 매년 2000명이 넘지만, 대개의 죽음은 금세 잊힌다. 지난 4월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가 한 예다.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노동자 3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에 여론은 안타까움과 분노로 들끓었다. 언론도 그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로 검색해보니, 사고 당일인 4월29일부터 1주일간 국내 54개 언론사가 보도한 기사의 총량은 2000건에 가까웠다. 그런데 1주일 뒤엔 그 수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한 달 만에 100건 남짓으로 급감하며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이렇게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져도 되는 걸까. 여기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언론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경향신문과 JTBC다. 우선 경향은 ‘산재(산업재해)’ 또는 ‘노동자 사망’ 관련 보도 건수가 다른 언론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빅카인즈 기준) 지난해 11월엔 사고로 숨진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죽음을 기록한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기획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때 만든 ‘산업재해 아카이브’는 지난 1월 업데이트되어 사망자 수는 1748명을 가리킨다.
기획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 사망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1300건이 넘는 재해조사 의견서를 살폈던 김지환 기자는 어선원 재해 자료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획 연재를 끝낸 지 보름 만에 ‘또 다른 김용균’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지난 4월과 5월 2편에 걸쳐 보도된 ‘바다 위의 김용균’이다. 경향은 이 기사에서 매년 140여명의 어선원 노동자가 사고 혹은 질병 등으로 사망하지만 산재보험법이 아닌 어선원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탓에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문제를 촘촘히 짚었다. 법과 제도는 복잡하고, 관련 전문가도 찾기 힘든 악조건에서 모바일팀 소속인 김 기자와 사회부, 정책사회부 소속의 다른 기자들은 ‘본업’을 하는 틈틈이 기획에 매달렸다. 그 결과 해양수산부가 ‘선내 안전보건기준 마련을 위한 TF’를 구성하는 등 움직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방송뉴스로는 드물게 삼성전자 직업병 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왔던 JTBC도 최근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해 연속 보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21일 현대중공업에서 올해 4번째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뒤였다. ‘뉴스룸’은 지난달 25일 현대중 산재 추적 보도를 톱뉴스로 5꼭지 연속 보도했다. 다음날에도 현대중 산재 건을 첫 소식으로 2꼭지 보도하고, 바로 이어서 재활용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파쇄기에 끼여 숨진 소식을 전했다. 경비노동자 고 최희석씨를 포함해 뉴스룸이 지난달 25일부터 나흘간 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보도한 것만 20건에 달한다. 그리고 지난 3일엔 추락사를 당한 에어컨 설치기사의 사례로 시작해 특수고용노동자 실태를 톱뉴스로 연속 보도했다. 안나경 앵커는 지난달 27일 “JTBC는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온전히 보호받는 그 날까지 추적하고 집중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일련의 보도는 권석천 신임 보도총괄이 주문한 ‘어젠다 제시’, ‘탐사기획 보도 강화’의 연장선에 있다. JTBC는 지난달 21일 기존의 탐사취재팀을 탐사기획1·2팀으로 분리하고 인원을 총 14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이날 발생한 현대중 노동자 사망 사고를 ‘단순 사건보도’로 넘기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했다. 탐사기획2팀이 발제했지만 기동이슈팀과 내셔널팀 기자들이 협업해 발 빠르게 움직였고, 그 결과물을 톱뉴스로 배치하며 힘을 실어줬다.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앞으로를 지켜봐야겠지만 일단은 그냥 고맙다”고 적었다. JTBC 보도국 관계자들은 1~2주 보도한 것만으로 평가받을 자격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이번 기획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히 했다.
작가 김훈은 지난달 28일 뉴스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 부유층이나 권세 높은 집의 도련님이나 아가씨들이 그렇게 계속 떨어져 죽고 깔려 죽었다 하면, 수십 년 동안. 그러면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진작 해결할 수 있었을 거예요.” 여성국 탐사기획2팀 기자는 “주변 지인이나 가족 대부분이 사무직 화이트칼라여서 생산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평소에 접할 기회가 없었고, 많은 기자들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며 “이번에 취재하며 반성했고, 앞으로 더 많이 취재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는 언론의 역할이 물론 중요하지만, 재해정보 공개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는 즉시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알려야 하는데, 고용노동부는 이 정보의 공개를 꺼린다. 그래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은 경찰발 ‘사건보도’로 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추가 정보를 얻으려면 국회의원실을 통해 노동부 자료를 받아야 한다. 김 기자는 “재해정보가 매일 안정적으로 공개되면 언론사들이 지금 홈페이지에 코로나19 사망자 수 현황을 걸어둔 것을 산재로 바꿀 수도 있고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불가피하게 의원실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부가 직접 정보를 제공하면 사망한 노동자나 사업장에 관한 맥락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노동 기자들도 학습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