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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 화려한 그래픽도 좋지만… 왜 음성지원·수어통역은 안 해주나요

[Cover Story]
현실과 동떨어진 '장애인 미디어 접근성'
재난 상황에도 정보제공 후순위로 밀려

언론사 15곳 웹 접근성 평균 51점
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

박지은 기자  2020.04.21 22: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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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이목화씨는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원하는 시간에 접하지 못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그는 퇴근 이후에나 방송을 통해 뉴스를 접하지만, 방송사들은 저녁 메인 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저녁 종합 뉴스가 제일 중요한 정보들을 다루지 않나. 자막방송이 제공되긴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알려면 농인 입장에선 수어 통역이 가장 정확하고 습득하기도 쉽다”며 “똑같이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알 권리가 있다. 긴급한 상황인데 정보를 얻는 데 차별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시각장애인 A씨는 한 종합일간지 웹사이트에 들어가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인포그래픽을 읽으려고 했지만 “이미지”라는 음성만 반복해서 들었다. A씨 옆에 있던 김병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소장은 “시각장애인들은 언론사 기사 안 텍스트를 화면 낭독기를 통해 읽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래픽이나 사진, 인터렉티브 콘텐츠같은 이미지”라며 “대부분 언론사 시각 콘텐츠에는 설명 태그를 넣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은 해당 콘텐츠들을 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수는 258만6000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언론사들은 이 5%의 독자·시청자들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을까. 앞선 사례들에서 보듯 장애인이 접근하기에 미디어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장애인들은 뉴스를 통한 정보 습득에 차별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 17일 장애인 인권 단체인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장애벽허물기)은 지상파 방송 3사의 총선개표방송에 수어통역이 없었다는 점을 비판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넣었다. 장애벽허물기는 “개표방송에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한 청각장애인 유권자들이 있었다. 이미지를 통해 개표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은 다행이지만, 개표방송 중간중간 전문가 대담이나 정세분석 내용은 수어통역을 했어야 했다”며 “개표방송은 선거 방송의 연장이며 선거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라고 볼 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재난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매번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지난해 4월 강원 고성 산불 재난은 지역 주민 3000여명이 대피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임에도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을 포함한 모든 방송사가 수어 통역, 화면해설 방송을 제공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위험에 노출된 바 있다. 장애인 및 언론·시민단체가 방송사들이 재난방송에서 장애인들을 배제한 것에 대해 비판하며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제출했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산림청 등은 ‘재난방송의 신속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고 KBS는 재난방송 매뉴얼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장애인들의 재난정보 접근성 소외 문제는 또다시 드러났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정부는 공식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지 않았다. 장애벽허물기 등 장애인들은 지난 2월3일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다음날부터 정부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등장했지만, 일부 방송사들이 발표자만 화면에 내보내거나 수어 통역 화면을 작게 제공해 장애인 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장애인단체는 청와대에 “일관성 있는 장애인 방송 지침”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장애인들이 나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때서야 후속조치를 하는 모습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을 비롯한 장애인단체 회원들은 방송사들이 강원도 산불 재난방송에서 수어통역 방송을 제공하지 않은 것을 두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출했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재난방송의 신속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고 KBS는 재난방송 매뉴얼을 개정했다. /연합뉴스

◇미디어 이용에 여전히 제약...웹 접근성 취약한 언론사 다수
시각장애인인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선임연구원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즐겨 이용한다. 두 플랫폼은 장애인들과 정보 약자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웹 접근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김훈 연구원은 “유튜브는 검색 기능, 동영상 플레이어 조작 등이 용이하고 넷플릭스 같은 경우는 화면해설 기능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가 잘 마련돼 있어 비장애인들과 다르지 않게 원하는 콘텐츠,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며 “한국 언론사 중 KBS가 그나마 웹 접근성이 갖춰져 있는 곳으로 꼽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언론사 홈페이지를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들어가더라도 헤매는 게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관련 인포그래픽에 음성 설명을 제공받지 못한 시각장애인 A씨의 사례도 해당 언론사 웹사이트가 웹 접근성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생긴 문제다. 텍스트가 아닌 콘텐츠는 대체 텍스트를 통해 의미를 알 수 있고, 키보드만으로도 조작이 가능하고, 모든 영상 콘텐츠에 자막이나 수어통역, 대본을 포함시키는 것.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언론사 웹사이트나 모바일에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웹 접근성 지침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의 웹 접근성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00개의 기업 웹사이트를 선정해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2.1’ 준수 여부를 평가하는 ‘2019년 웹 접근성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무작위로 평가 대상에 추출된 15개 언론사(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머니투데이, 서울신문, 연합뉴스, 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EBS, MBC, MBN, YTN)의 평균 점수는 51.1점에 불과했다. 1000개 기업의 웹사이트 평균 점수는 53.7점이었다. 95점 이상으로 우수 평가를 받은 65개 사이트에 언론사 사이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언론사 사이트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제약이 많다는 의미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이제 신문사에서도 영상 콘텐츠들을 많이 내놓고 있는데 자막이나 스크립트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발견한다”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웹 접근성 지침 중에 영상에 자막 또는 스크립트, 수어통역 중에 하나만 올리면 된다. 웹 접근성 지침 자체도 부족한 면이 있는데 그마저도 지키지 않는 언론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가 SBS와 지역민방, 종편 등 민원이 접수된 방송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9 방송국 웹 접근성 실태 조사’에서도 대부분 ‘매우 미흡’ 평가를 받았다. JTBC(71.9점)와 TV조선(71.8점)을 제외하고 대부분 언론사가 20점대 후반에서 60점대 초반에 머물렀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국가정보화기본법 등에 따라 모든 공공기관과 법인은 웹사이트에서 웹 접근성을 준수해야 한다. 장애인이 차별을 받았거나 의무 이행이 되지 않으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권리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한 시각장애인이 ‘지상파 방송 3사와 부산지역 방송사의 웹사이트가 시각장애인 등이 이용하는데 제약이 크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해 인권위가 해당 방송사들의 웹사이트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이후 KBS는 지난 2015년 한차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웹 접근성 품질인증을 받았다. 웹 접근성 품질인증은 평가 기관이 웹 접근성 표준지침을 준수한 우수 사이트에 대해 웹 접근성 수준을 인정하고 품질 마크를 부여하는 인증제도다. 민간 기업이 품질인증을 받는 것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웹 접근성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품질인증의 갱신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이 인증을 한차례 이상 받은 언론사는 KBS, EBS(장애인서비스 사이트), JTBC, TV조선 정도였다.


지상파 3사는 자체적으로 웹 접근성 지침에 따라 준수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한다고 밝혔다. MBC 관계자는 “MBC는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별도 페이지 운영을 하고 있었지만 지난 2017년 인권위가 별도 페이지를 운영하지 않고 대표 웹사이트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하라는 권고를 했다”며 “이후 장애인 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시각장애인들도 이미지를 접할 수 있도록 대체 텍스트화하는 등의 MBC 웹사이트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SBS 측은 “2016년 방통위 평가 보고서를 바탕으로 스킵 네비게이션, alt 태그 운영, 페이지 내 구성요소 간 Tab 키의 초점이동을, 2017년에는 레이어 닫기 버튼 추가, 키보드 초점 이동 순서, 적절한 대체 텍스트 제공 등 전반적인 웹 접근성을 개선했다”며 “올해는 영상 재생 페이지의 웹 접근성 개선을 완료했다. 개선한 작업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직군이 함께 지속적으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병수 소장은 “언론사 웹 접근성 문제뿐만이 아니라 무인 키오스크에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이 주문에 애를 먹거나 코로나19 여파로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받는 온라인 강의에서도 접근성 문제가 나타나는 등 발전하는 기술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며 “개발자들이 개발 첫 단계부터 장애인 소비자들도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장애인 접근성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방송에서의 장애인 정보 접근 제약
방통위의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 3사, 보도전문채널, 종편채널은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수어통역방송 5%에 해당하는 장애인방송물을 편성해야 한다. 대체로 방송사들은 목표치 정도의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애초 장애인방송 비율이 너무 적어 방송 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장애벽허물기를 비롯한 장애인 단체들은 방송통신위원회와 KBS, MBC, SBS 등에 저녁 종합 뉴스 수어통역 화면 제공, 수어통역 방송 비율 30% 확대 등을 요구하는 차별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의 요구에도 현재까지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 뉴스에는 수어 통역 화면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KBS 관계자는 “KBS의 메인 뉴스 화면에는 자막, 그래픽 등 여러가지 효과가 많이 들어가다보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욕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언어가 수어임을 인지하고 있다. 올해부터 수어 통역사들을 확보해 7시, 9시 뉴스를 제외한 KBS 정규 뉴스 프로그램에 수어 통역 제공을 확대하는 등 점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화면해설방송도 차별이 존재한다. 방송사들은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본방송에서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방영한 MBC ‘신입사관 구해령’이 가장 최근 본방송으로 화면해설을 제공한 드라마였다. MBC 관계자는 “‘신입사관 구해령’은 사전제작 드라마였기 때문에 본방으로 화면해설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본방에서 화면해설을 제공한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