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역 유일한 지상파 라디오 방송사인 경기방송이 개국 23년 만에 폐업을 결정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스스로 폐업을 결정한 것은 방송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방송은 1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지난달 20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한 폐업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경기방송의 총 주식 수 51만9900주 가운데 83.12%인 43만2150주가 참석해 성원이 이뤄졌으며, 이 중 99.97%인 43만2050주가 폐업에 찬성했다. 경기방송은 부동산 임대업만 남기고 방송사업과 광고사업 등 방송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접기로 했다.
경기방송은 주총 직후 ‘주주 일동’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지속된 언론탄압과 방송장악 세력에 맞서지 못하고 폐업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방의회와 지방정부가 주축이 된 사상 초유의 언론탄압이 이어지면서 기존 예산들이 줄줄이 중단, 삭감됨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인 매출의 급감이 뒤따랐고, 올해 역시 주요 예산들이 큰 폭으로 삭감 및 중단됐다”면서 “곧이어 불어 닥친 내외부 세력의 경영간섭으로 경기방송은 주인 없는 회사로 변해 버렸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부당한 언론탄압과 외부 음해 세력에 맞서야 할 노조와 일부 직원들은 이들의 뜻과 장단 맞추듯 내부 동료, 상사, 임원들과 투쟁하는 양상을 전개시키는가 하면, 대주주들을 범법자 취급까지 하면서 지나친 경영간섭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주총에서 보고된 2019년도 손익계산서를 보면 매출액이 72억원으로 전년 대비 18억원 가량 줄고 영업이익 규모도 줄었으나 여전히 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이날 주주들에게는 3억원의 현금배당도 이뤄졌다. “기하급수적인 매출의 급감”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운 부분이다.
조건부 재허가 과정에서 지적된 사항과 노조의 정상화 요구 등이 경영간섭, 언론탄압이라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경기방송이 재허가 심사에서 기준점수에서 미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종합편성 라디오 사업자로서 20년 넘게 방송을 해온 점, 시청자들의 시청권 보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 당시 노조는 허가 취소를 막기 위해 사측의 요구에 따라 탄원서를 모아 방통위에 전달하기도 했다.
경기방송 구성원들은 폐업 결정에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폐업이 부결됐을 경우 초래될 혼란을 피하게 돼 오히려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주주총회가 폐업을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방송 노동자들은 방송을 계속 이어가겠다”면서 “경기방송 노동자들은 주주총회의 이번 결정을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방송윤리가 왜 중요한지, 방송법이 공중파 존립의 근거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방송을 통해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경기방송지부는 폐업 결정 후 직장이 폐쇄될 가능성에 대비해 사업장 밖에서 ‘무임금’으로 방송을 이어가는 방법을 강구해왔다. 다행히 이날 주주들은 “경영진에서 방송통신위원회에 즉시 방송사업을 반납하고 폐업신고서를 제출하더라도 정파 시점에 대해서는 방통위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대한 잘 조정해 줄 것을 주문했다”면서 “방송사업을 완전 폐업하더라도 경기방송이 보유하고 있는 방송장비는 당장 매각하지 않고, 방통위와 새로운 사업자의 조속한 방송 재개를 돕기 위해 최대한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방통위 역시 폐업 신고 자체는 막을 수 없더라도 새 사업자를 구할 때까지 방송 정파만큼은 막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방송에 방송 중단을 유예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방송지부는 “방송통신위원회에 강력히 요구한다. 국민이 넘겨주신 귀중한 공중파, FM 99.9MHz는 계속 돼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도 이날 성명을 내고 “방통위는 지역민의 시청권과 구성원의 고용 안정을 위한 대응원칙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방통위는 경기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위기에 빠진 지역방송의 정책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경기방송의 공적 책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자를 새로운 사업자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민주언론시민연합 또한 “지상파 사업자로 방송의 공공성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노동조합과 정치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폐업을 결정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위기는 기회”라며 “사익을 위한 방송이 아닌 경기도민의 알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방송의 공공성이 보장되는 새로운 공익적 라디오 방송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