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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50년전 뉴스 생산 관행에 머물러 있다"

'언론개혁: 취재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세미나

강아영 기자  2019.10.28 18: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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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언론개혁: 취재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세미나가 열렸다.

“시민들의 언론 ‘혐오’가 심각한 수준이다. 단순히 못 믿는 정도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싫어하고 강하게 분노하고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지난 몇 개월간 이어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증 보도는 결과적으로 언론의 취재와 보도 양태에 대한 규탄으로 끝났다. 박영흠 교수에 따르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전후해 쏟아진 검증 보도들은 “시민들의 마음속 불씨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됐다. 집단 전체를 조롱하는 ‘기레기’라는 멸칭이 범람했고, 왜 검찰과 언론이 유착하냐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됐다. 일부 기자들은 좌절하고 낙담했고, 한편에선 시민들이 너무 정파적이라거나 취재·보도 현실을 모른다며 본격적인 자기 방어에 나서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의 사태에서 언론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양해보다 성찰을 통한 변화라고 지적한다. 지난 25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언론개혁: 취재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 세미나도 그런 취지에서 열린 행사였다. 이 자리에 모인 교수와 기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번 현상을 분석하고, 언론이 어떻게 저널리즘 원칙을 회복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언론의 ‘사실 충분성의 원칙’을 문제 삼았다. ‘사실이면 뉴스가 된다’고 믿으며, 심지어 ‘사실만으로 좋은 뉴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뉴스를 내보내는 것이 사실 충분성의 원칙이다. 예컨대 별도의 배경 설명 없이 그대로 기사가 되는 정부 관료의 발표, 검찰 수사관의 언질, 사기업의 실적 통계들이나 한 톨의 성분만 달라져도 특종이 되는 기사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준웅 교수는 “우리는 뉴스를 구성하는 문장이나 장면을 보면서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겠거니 간주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실에 대한 명제가 참인 것은 아니며 심지어 참인 명제라도 불공정하거나 사악한 의도를 담을 수 있고, 참인지 아닌지 애매한 명제라 할지라도 중요한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팩트’는 뉴스의 한 재료일 뿐 뉴스의 전부가 아니며, 훌륭한 뉴스의 가장 좋은 부분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기사들은 아무리 봐도 사실을 이어 붙인 것 이상이고, 그렇기에 한국 언론은 사실 보도라는 사소한 성취에 만족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흠 교수도 언론의 뉴스 생산 ‘관행’이 오늘날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낸 결정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구체적으로 △사실 확인 관행 △취재원 의존 관행 △‘야마’ 관행 △단독 경쟁의 관행을 문제 삼았는데, 사실 확인 관행의 경우 단편적 사실을 단순 전달하기보다 최대한 깊이 파고들어 종합적 사실을 보여주는 보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취재원 의존 관행의 경우 문제의 핵심은 언론이 검찰을 지나치게 신뢰하며, 피의자의 관점을 배제한 채 언제나 검찰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도한다는 점”이라며 “검찰 출입기자들의 관행상 검찰의 공식 브리핑이나 티타임에서 나온 내용, 또는 수사팀 내부의 이른바 ‘빨대’가 누설한 정보는 곧바로 ‘사실’이 될뿐더러 기자들은 검사와 피의자 쌍방을 결코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검찰과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가 ‘단절’은 아니겠지만 지나친 의존과 맹신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건식 MBC 시사교양1부장도 언론의 생산자 관행을 문제 삼았다. 박건식 부장은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보도만큼이나 수많은 오보가 양산됐는데 누구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PD 입장에선 상당한 의문이 느껴지는 지점들인데, 관련 기사가 아예 없었던 적도 있다”며 “앞서 두 교수가 말했듯 언론에 어떤 악의가 있다기보다 관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급격하게 발전했는데 기자는 과거 50년 전 생산 관행에 머물러 있고 그 격차가 엄청나게 커진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박 부장은 또 그 핵심을 출입처로 지목하고 △유착을 지나 동일체가 돼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 △국민이 아닌 권력에 관심이 있다는 점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기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지금 검찰이 언론사 상대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악의 집단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과거 80년대 전두환 정권 때는 거악을 해결하기 위해 기자들과 결집해 기사를 내고 그러면서 수사를 진척시키곤 했다”며 “특수부 검사와 기자의 밀월 관계는 역사성이 있다. 한편으로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자기 믿음과 뉴스가 충돌하면 믿음을 유지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 기자는 이어 “기자들 교육이나 경쟁보다 더 중요한 건 언론사의 정파성 문제 같다”며 “이를테면 조 전 장관의 경우 왜 그렇게 집요하게 그를 무너뜨리려 했을까. 그 바탕엔 특종 경쟁도 있지만 이걸 제대로만 보도하면 회사에서 출세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을 것이고, 여기서 자유로운 언론사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송태엽 YTN 해설위원실장은 대의정치가 실종된 현실을 문제 삼았다. 송 실장은 “1인 미디어가 대거 등장하고 셀럽 저널리즘이 기성 언론을 위협할 정도의 상황이 된 것은 기성 언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대의정치가 실종되고 광장의 정치가 됐기 때문”이라며 “언론은 어느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선택할 수 없고, 결국 대의정치가 되살아나는 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동시에 언론도 기존 관행들을 고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취재보도 관행이 바뀔 수 있을 것인지 실현 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정환 대표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수많은 언론사가 경쟁하는 구조적 문제를 생각해보면 그러지 말라고 해서 바뀔 것인가. 결국 검찰의 제도 변화가 필요한 것이지, 기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은 어렵다”며 “검찰 말을 그대로 받아쓰지 말라는 것도 언론에게 일종의 플레이어가 되라고 하는 셈이다. 충분한 취재 역시 중요하지만 현재진행형 이슈에 첨예한 정치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데, 언론에게 팔짱 끼고 물러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언론이 경쟁을 통해 접근 가능한 최선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라며 “오보를 내보낼 위험을 무릅쓰고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계속되는 감시와 견제, 비판이 있으면 언론도 자성할 것이지만 언론에게 완벽한 진실을 바라는 것은 허구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양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팀장도 “매일 수능 공부하는 고3 학생에게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만들어오겠냐”며 “언론 관행에 문제가 있다면 ‘검찰 출입 때 이 용어는 쓰지 마라’ ‘데스크는 이렇게 해라’ 등 자세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50년 동안 해온 관행인데 당사자는 쉽게 못 바꾼다”고 했다.


세미나에선 실제 몇몇 전문가들이 거칠게나마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영흠 교수는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보도를 경쟁에 맡기지 말고 ‘언론사 공동취재’ 방식으로 바꾸자”면서 “여러 언론사가 컨소시엄 형태의 공동취재팀을 꾸려 정기적 회의를 통해 취재 성과를 공유하고, 엠바고가 설정되어 있는 보도시일에 일제히 보도하면 된다.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예시, 새로운 관행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기 위한 마중물 차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기자들 간 직업적 동질성부터 해체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곳과 유대를 끊어야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기자가 될 것”이라며 “한국 언론만의 저널리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공동체 저널리즘을 실천하기 위해선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가서 누가 있고, 무엇을 알고 모르며,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발견해야 하고, 그런 공동체 속에 출입처가 있는 것이 진정한 알 권리의 충족이며 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