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 이날 감사대상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 KBS, 방송문화진흥회, EBS 등을 대표해 참석한 각 기관의 ‘장’은 모두 남성이었다. 1년 전, 아니 10년 전에도 그랬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63회 신문의 날’ 축하연. 이날 축하 케이크를 앞에 두고 대통령과 축배를 든 주요 언론단체 ‘장’들 역시 전원 남성이었다. 한 외신 기자는 이날 청와대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리트윗하며 “Look at all those women!(저 여자들 좀 봐!)”라고 적었다. ‘반어법’으로 상황을 꼬집은 셈이다.
언론사 뉴스룸의 ‘성 불균형’ 문제는 이제껏 많이 거론돼왔다. 지난해 8월 기자협회보가 조사했을 당시에도 뉴스룸 내 여성 보직 간부의 비율은 10~20%대에 불과했다. 뉴스 제작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간부들의 성비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만 전체 여기자의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 불균형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보는 시각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언론 관련 정책을 결정, 집행하거나 지원하는 등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들의 경우는 어떨까. 기자협회보는 방송법과 신문법, 뉴스통신진흥법 등을 근거로 설립된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공영방송 이사회 등의 구성을 분석했다. 대상 기관은 방통위, 방심위, KBS 이사회,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EBS 이사회,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통신진흥회 등 7개다. 이들 기관장 역시 모두가 남성이며,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먼저 방통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5명이 모두 남성이다. 2008년 방통위가 설립되고 지금의 4기 방통위까지 이르는 동안 여성이 방통위 상임위원을 맡은 것은 1기 방통위의 이경자 위원 단 한 명뿐이었다. 이런 방통위가 추천하거나 임명하는 공영방송 이사회도 심각한 성 불균형을 보인다. KBS 이사회는 11명 중 2명이, 방문진은 9명 중 2명만이 여성이다. 직전 10기 방문진 이사회는 9명 모두 남성으로만 선임됐었고, EBS 이사회 역시 9명 모두 남성이었다가 지난해 9월 여성 4명이 선임됐다. 이에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방통위원장에게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방송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방송기구에 성별 균형 참여가 중요하다”며 “방통위 등 방송 관련 기관 이사의 성별 균형 제도 마련”을 권고했다. 사실 이런 요구가 처음은 아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앞서 지난해 3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시 특정 성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할 것 등을 방통위에 제안한 바 있다.
신문·통신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임원 추천권을 가진 뉴스통신진흥회는 이사 7명 중 여성이 단 1명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이사장과 상임이사 3명을 포함해 10명의 이사 모두 남성이다. 언론진흥재단은 지난 2010년 출범 이래 단 한 번도 여성이 임원을 맡은 적이 없었다. 공모를 통해 뽑는 상임이사 외에 정관상 신문협회,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가 추천하는 비상임이사(5인 이내) 역시 항상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재단 출범 이래 여성이 공모에 지원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열린 기회’를 차버린 여성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와 관련해 여성 언론인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얘기한다. 언론재단 상임이사 공모 시 자격요건을 보면 ‘리더십’, ‘대외업무 추진능력’ 등이 요구되는데, 이 같은 능력을 뒷받침해줄 보직간부 경력 등에서 여성 언론인들은 현실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언론계 한 여성 인사는 “간부였거나, 정치적 끈이 있거나 그런 부분이 작용한다고 보면 (여성은) 이미 게임에서 배제된 것”이라며 “형식적으로는 이미 내정된 것 같은데 들러리 서주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방심위 권익보호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도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 네트워크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후보에 지원하더라도 여성들이 경합구조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정부는 지난달 ‘범정부 균형인사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여성 임원이 없는 공공기관에 최소한 1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임용하고 그 결과를 기관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언론재단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됐다. 재단 측은 상임이사 등을 공개 모집할 때 여성가족부나 행정안전부에 인재 DB 등 추천 요청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도 지난 4월 인권위에 보낸 회신문에서 성평등 규정 등이 반영된 개정 법률안들이 다수 국회에 계류 중인 만큼,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 시 ‘지역성 및 성별, 직능별 대표성 등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기준을 세웠고, 국회에도 비슷한 취지의 정책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 정부의 기조(성평등)도 그렇고, 현 위원장도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강혜란 대표는 “고위직일수록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은 건 우리 사회 전반의 특징이지만, 미디어의 경우 사회문화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고, 특히 젠더와 관련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성 불균형 해소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