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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직장 내 괴롭힘' 문제 공감… 단협·사규에 적극 반영

[근기법 개정안 내달 16일 시행… 언론사 폭언·폭행 악습 철폐될 수 있을까]
국민, 올 초 단협 개정때 명시... 연합·조선, 관련 사규 정비중

강아영 기자  2019.06.26 15: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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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를 X같이 썼네.” 종합일간지 A 기자는 정치부 시절 기사를 낼 때마다 데스크로부터 매번 폭언을 들었다. 해당 데스크는 기사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항상 비속어와 함께 인신공격을 했다. ‘대가리에 뭐가 들었냐’ ‘XX놈’ 같은 욕이 부지기수였다.


A 기자는 “마감 시간에 쫓기는데 후배 기자가 자기 기준에 형편없는 기사를 들고 왔으면 데스크도 당황스럽거나 스트레스 받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서도 “그런 상황이 특수한 때가 아니라 계속 반복되니 어느 순간부턴 부원들이 기사를 서로 미루더라. 기사를 올리기만 하면 인신공격을 받으니 다들 기사를 안 쓰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보다 언론계에 폭언 행위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아직도 개인차가 큰 것 같다”며 “교육을 빙자한 폭언이 여전히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폭언 문화는 결과적으로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통신사 B 기자도 수습기자 시절 사안을 보고할 때마다 매번 사수의 엄청난 폭언을 견뎌야 했다. B 기자는 “욕설뿐만 아니라 보고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땐 사수가 지금부터 10분 줄 테니 무엇을 알아오라거나 누구 발언을 따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며 “그런 지시를 받을 땐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을 주고 그 안에 보고하지 못하면 엄청난 욕설을 퍼붓는 통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당한 지시이자 심각한 언어폭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내 분위기는 이를 용인하는 듯했다”며 “수습기자 신분에 선뜻 문제를 제기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언론계에선 그동안 폭언이나 인신공격성 발언도 모자라 폭력 사태까지 일어날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했다. 억압적인 상하 관계 속에 선배가 후배를 가르친다며 욕설을 퍼붓거나 후배 기자가 선배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지난 5일 동아일보 출판국 한 부장급 기자가 회사를 그만두며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 “간부들이 직원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조선일보도 지난 1월24일자 노보에서 ‘폭언은 명백한 해사 행위’라며 사내 폭언 근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개인 인식 개선에만 의존했던 폭언·폭행 행위는 그러나 조만간 강력한 사내 징계 사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신설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고용노동부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 사례로 △폭행 및 협박 행위 △폭언, 욕설, 험담 등 언어적 행위 △과도한 업무 부여 등을 꼽았는데, 이에 따라 언론사에선 개정법 시행 전까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기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돼서다.


이미 일부 언론사는 올해 단체협약을 하며 관련 내용을 사규에 반영했다. 서울신문은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한 자’를 성실복무의무 위반 항목의 징계 대상으로 추가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행위와 예방교육, 행위 발생 시 조치도 사규에 포함시켰다.


국민일보도 올해 초 단협을 개정하며 징계 사유에 사내 괴롭힘 내용을 명시했다. 공채기수가 경력직이나 온라인 기자 같이 상대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이들을 괴롭혔던 것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노용택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은 “최근엔 그 정도가 심해져 가해자가 타 부서로 발령 나기도 했다”며 “고용이 불안정한 분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믿고 의지할 데가 없더라. 그래서 노조가 먼저 처벌조항을 마련하자고 제안했고 회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들도 사규 정비가 한창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2일자 사보를 통해 사규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규에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및 행위유형’ ‘피해 근로자에 대한 보호조치’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징계조치’ 등이 담긴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 인사팀 관계자는 “신설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사규 규정을 본사 업무포털에 게시하고 정기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괴롭힘 행위는 누구든지 회사에 신고할 수 있고 철저히 조사해 가해자를 포상징계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도 사측이 관련 안을 만들어 노조에 전달한 상황이다. 연합 노조는 그러나 피해자 보호 범위가 좁다고 판단,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 협의 중이다.


사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움직임도 있다. 경향신문은 직장 내 괴롭힘뿐만 아니라 갈등관리, 성희롱까지 한 번에 처리하자며 단협과 사규에 수십 년째 방치돼 있던 고충처리위원회를 정상화시키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대광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은 “문제가 생겼을 때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든 것”이라며 “필요하면 외부 전문가의 상담도 가능케 했다. 고충처리위가 가동된다면 아마 인사위로 가기 전 1차 판정위원회 성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4분기 노사협의회를 통해 고충처리위를 회사에 정식 제안했고 사측도 적극 검토하는 중”이라며 “괴롭힘은 실제 존재한다. 그걸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