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은 힘이 세다. 바위 틈 사이에 앉아서도, 키스하는 커플 옆에서도, 다급하면 기사가 써진다. 지난달 23~2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직접 체험한 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러시아 방문을 현장 취재했던 4박5일간, 식당에서 제대로 식사를 한 건 채 3번이 안 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옵션 아닌 필수라는 킹크랩은 ㅋ자도 구경 못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을 약 100m 거리에서 육안으로 봤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블랙 펌프스 구두에 플레어 스커트로 절제된 패션 감각을 선보인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어찌 감히 킹크랩과 바꾸랴.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지난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도 현장에서 취재했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특별했다. 일부 백악관 풀기자를 제외하고는 양 정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막혔던 싱가포르·하노이와 블라디보스토크는 달랐다. 서울에서 주한러시아대사관을 통해 무려 2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내고 발급받은 취재비자를 내밀면 의외로 생각보다 가까운 곳까지 접근이 가능했다.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 편으로 도착했던 블라디보스토크 역이 대표적이다. 4월 말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영하의 날씨다. 밖에서 카메라와 녹음기, 노트북을 들고 있자면 손이 곱는다. 궁리를 하다 역사 안에 들어가니 북·러 정상회담을 맞아 설치된 보안검색대만 통과하면 역사 안에서 서서 기사를 쓸 수 있었는데, 김 위원장의 1호 열차가 서 있는 곳을 바로 내려다보는 명당이었다. 러시아 경찰도 도처에 깔려있었지만 때로 “노 포토(No photo)”만 외칠 뿐 별다른 제어는 없었다. 심지어 사진도 슬쩍 찍어도 경찰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하여간 기자들 못 말려”라는 표정으로 포기하곤 했다. 김 위원장이 도착하던 25일 오후엔 갑자기 날이 흐려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러시아 연해주 주정부가 준비했던, 조금은 초라했던 레드카펫 위엔 비닐이 깔렸다. 이어 진공 청소기며 빗자루로 레드카펫을 청소하는 모습은 최고 수준의 환대를 예상했던 현장 기자들에겐 살짝 의외였다.

김 위원장이 묵었던 극동연방대 역시 생각보다 접근이 어렵지 않았다. 물론 북·러 양 정상이 만나기로 한 건물은 시야에서 교묘히 가려졌고, 해당 건물은 일부 러시아 크렘린궁 출입기자를 제외하고는 접근이 안 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기숙사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엔 기자들이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부각시키려는 러시아 정부가 기자를 특별히 배려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약 200여명에 달하는 기자들 중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각 50% 정도였다. 이들은 모두 바위 위나 잔디밭 위에 코트를 깔고 노트북을 올려놓고 마감을 했다. 노트북 배터리가 떨어지면 근처 학교 건물로 들어가서 콘센트를 꽂았는데, 대담한 애정 행각을 보이는 러시아 학생들 곁에 쪼그리고 앉아 콘센트가 있음에 감사했던 기억도 각별하다.
러시아 현지인들의 도움도 컸다. 러시아인들은 처음엔 무뚝뚝하다. 러시아어 특유의 거센 억양 덕에 (러시아니까 당연하지만) 영어가 잘 통하지 않기에 의사소통도 답답하다. 그러나 번역앱을 들고 먼저 웃으며 다가가면 열에 다섯은 예상보다 더 친절한 태도를 보여줬다. ‘드미트리’라고만 자신을 소개했던 택시 기사도 그랬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좀 더 안전히 촬영을 할 수 있는, 현지인만이 알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가주기도 했고, 김 위원장을 무작정 뻗치기하는 나를 4~5시간 기다려주기도 했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건 북한 기자들의 맹활약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른바 ‘최고존엄’이라 부르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렌즈에 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한 번은 러시아 현지 기자단과 자리 문제로 실랑이가 붙었는데, 기자에게 영어 통역을 부탁하기도 했다. “오른쪽으로 3미터만 비켜달라고 전해주시오”였다. 남북 기자들의 짧지만 강렬한 콜라보 현장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취재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취재 비자 발급 등 기자 지원을 위해 적극 힘써준 외교부 대변인실에도 각별한 감사를 전한다. 다음 북한 관련 취재현장에서도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피어날 것이다. 그때까지 다들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