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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국회'의 동물은 누가 쓴 단어인가

막말·고성·몸싸움 오간 국회에
언론은 "정치 실종" 평가했지만
언론도 자극적 보도로 갈등 양상 단순전달했다는
'따옴표 저널리즘' 비판 받아

김고은 기자  2019.05.08 00: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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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편안과 사법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진 지난달 26일 새벽 국회 의안과 파손된 출입문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긴급 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동물 국회.’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지정하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언론은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극렬한 대치를 묘사하며 ‘폭력 국회’, ‘광기의 국회’, ‘막장드라마’ 같은 표현을 썼다. 그리고 막말과 고성, 몸싸움을 주고받으며 구태를 답습한 국회를 향해 “정치가 실종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패스트트랙 보도와 관련해 언론이야말로 자극적 보도에 치중하거나 갈등 양상을 단순 전달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고질병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인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지난 5일 ‘‘정치 혐오’만 남긴 ‘동물 국회’ 보도’란 제목으로 패스트트랙 충돌을 다룬 언론 보도의 문제를 짚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방송사 저녁 메인뉴스에서 패스트트랙 관련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한 지난 3월15일부터 4월28일까지 보도 내용을 분석한 결과 78.1%가 단순히 상황을 중계하는 보도였고, 패스트트랙에 포함될 법과 제도를 자세히 설명하는 보도는 6.3%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사안의 본질을 심층보도하기보다 대립과 충돌만 부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야의 물리적 충돌이 시작된 지난달 25일부터 언론은 ‘전쟁터’, ‘육탄전’, ‘난장판’ 같은 표현을 써가며 여야 대치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JTBC ‘뉴스룸’은 아예 이날 몸싸움이 벌어지는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러 차례 현장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쇠 지렛대 ‘빠루’가 등장한 다음 날은 더 했다. 이날 하루 동안만 ‘빠루’에 관한 기사가 네이버에 200건 가까이 쏟아졌다. SBS ‘8뉴스’는 ‘빠루쟁탈전’이란 제목을 붙인 3분짜리 비디오머그 영상을 제작해 틀기도 했다. 같은 날 MBC는 “애들이 볼까 무섭다”는 제목으로 여야 의원들이 주고받은 “듣기 민망한 막말”을 정리해 한 꼭지로 다뤘다.


‘동물 국회’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의 주어는 대부분 ‘국회’ 혹은 ‘여야’였다. 시시비비나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고 싸잡아 비판하는 ‘양비론’ 보도의 전형이다.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장을 맡고 있는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런 상황이 왜 벌어졌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지적해줘야 하는데 논란거리만 증폭시켜서 사람들에게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며 “결국 언론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보다 우리 사회가 갈등 해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비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기자들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국회 출입 기자는 “갈등과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도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보도하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맥락을 같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잘 반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 자체도 어려운데 그날그날 벌어진 일을 막는 데 급급하다 보니 충분히 공부해서 보도하지 못했고, 법안 내용이나 사안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쓰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물리적 충돌 자체가 뉴스고 본질이라는 항변도 있다. 임성수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는 “여야가 몇 년 만에 물리적으로 부딪친 상황이 뉴스이기 때문에 그 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했던 것”이라며 “복잡한 법안이나 논의 과정보다는 사건사고 형태의 충돌 같은 것들에 독자나 시청자들이 더 흥미를 느끼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 기자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지적에 대해서도 “뉴스 유통이 실시간으로 되다 보니 정치인의 발언 기사가 많아지고, 실제 독자들도 읽고 흥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포기할 순 없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문사가 온라인 기사를 신문에 그대로 싣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 소비가 단편적으로 이뤄지는 포털 세계에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가 정책 설명 기사보다 더 두드러지게 읽힌다는 현실을 부인할 순 없다. 종합일간지 한 정치부 기자는 “신문에서는 전체 보도를 통해 톤을 조절한다면, 낱개의 기사가 별개로 유통되는 온라인에서는 자극적 보도가 더 주목을 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인터넷 언론사들이 늘어나고 포털 클릭수를 노린 기사들도 다량 생산되면서 비슷한 ‘인기기사’들이 복제, 생산되어 확증편향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또한 ‘단순 중계식 보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장 몸싸움이 터지는 국면에서 정리기사를 쓰려면 어느 정도의 인력과 에너지 투입이 필요한데 그런 수요에 대한 확신이나 투입할 인력은 부족한 편이고, 출고 기자가 바로 기사를 송고하도록 디지털화가 되면서 각 사에서 ‘정리기사’를 맡는 디지털 전담 기자의 존재가 미미해져 가는 상황도 악화 요인”이라며 “하지만 어느 정도 갈등 상황이 정리되면 대부분의 언론이 분석 보도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