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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젠더·공정이 최우선 가치… 언론사에 90년대생이 온다

언론계 보수적 분위기 달라질까

최승영, 김달아 기자  2019.05.01 14: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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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언론사에. 만 23~29세(1990년생부터 1996년생까지)인 그들은 이미 주니어 기자 생활에 한창이거나 막 언론사에 발을 디딘 세대다. 언론사 밖에선 90년대생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이들이 누구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려는 수요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어떨까. 취재부서 8년차 A 기자는 “불과 2~3년 전과 비교해도 분위기가 확 다르다”면서 “요즘 입사한 후배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더 많은 90년대생이 언론사로 밀려올 것이다. 미디어 산업 격변의 시기, 가장 공고하고 보수적인 조직 중 하나인 언론사가 어떻게 이들을 마주할지, 이들의 등장이 언론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90년대생을 바라보는 시선...‘이질감’
현재 언론사 뉴스룸 주류가 90년대생을 바라보는 정서는 이질감에 가깝다. 기존 언론사에서 용인되지 않던 것들이 이들에게선 거리낌 없이 돌출된다는 시선이 많다. 이들과 직접 맞물려 일하는 사회부·디지털부서, 특히 차장이나 팀장급 이하 중간 간부들에게서 이런 인식은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칼퇴근’처럼 워라밸을 강조하는 모습이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종합일간지 디지털부서 팀장급 B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팀 90년대생들은 오후 6시1분이면 칼같이 퇴근해요. 밝은 표정으로 나가는데 당황스럽기도 하고. 처음엔 따로 얘길 해야 하나 했어요. 편집국만 해도 부장 데스킹 끝났는지, 초판도 확인하고, 뉴스 체크도 하고 그러잖아요. 여기선 제가 눈치를 보죠. 퇴근 후나 주말엔 카톡하기 꺼려져서 카톡창에 써놓기만 하고 근무일이 되면 전송 버튼을 눌러요. 팀원들의 여가시간을 침해하는 무능한 선배로 인식될까 봐요.”


이 같은 인식은 출·퇴근 외 업무수행, 회식 등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도 이어진다. 10년차가 넘은 방송사 C 기자는 “요즘 수습은 하리꼬미도 안 하고 52시간 딱 지켜 일하는데 아파서 병원 간다는 이야기가 그렇게나 많다”며 “사회는 늘 변화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너무나 빨리 변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신문사 17년차 D 기자는 “이 친구들은 점심 때 자기만의 시간을 갖더라. 회식에서도 술을 안 먹는다”며 “그런 자리에서 ‘선배가 그 기사를 썼어야했다’ 같은 얘기가 나오는 건데, 기존 언론사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이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젠더’와 ‘공정함’에 민감하다?  
90년대생은 젠더 이슈에 매우 예민하다는 반응도 공통적으로 나온다. 종합일간지 9년차 E 기자는 “아이템을 선정할 때 젠더 이슈와 연관된 건지 생각도 못한 부분에서 ‘불편하다’는 반응이 나와 놀랐다”고 했고, 종합일간지 부장급 F 기자는 “우리회사 신입 남자 기자들은 다 페미니스트”라고 언급했다. 20년차에 가까운 방송사 G 기자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부각되면서 남자들이 손해보고 있다는 인식에 20~30대 남자들이 민감한 것 같다”며 “기자사회에서도 그 비율은 유지되는 거 같다. 특별히 젠더 의식이 높진 않아도 민감한 것 맞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남자들 잔치인 기자협회 축구대회에 꼭 참석해야 하냐’며 익명 게시판이 시끄러웠는데 ‘그럼 여자들도 만들라’라는 글이 올라왔다”면서 “이후 회사에 여기자협회가 만들어지니 ‘왜 만들었냐’는 말도 나왔다. 대놓곤 못해도 그렇게 튀어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정하지 못한 대우나 개인에 대한 불이익에 즉각 의사를 표하는 모습도 최근 몇몇 언론사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한 매체에선 개인사정으로 퇴사했던 기자의 재입사를 두고 노조 익명 게시판이 들끓는 소동이 있었다. 함께 일해 본 고연차 기자들과 경영진은 퇴사 당시 사정을 고려해 문제없다고 판단하고 재입사를 추진했지만 젊은 기자들의 반발이 컸다. ‘이해될만한 사정이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인데 역량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개인사정을 재입사 이유로 거론하는 게 맞냐’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해당 언론사 H 기자는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느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존엔 문제되지 않았을 일”이라며 “당시 경영진도 화들짝 놀란 것으로 안다. 확고한 원칙과 제도 마련, 인식 개선 필요성을 실감했던 경우”라고 말했다.


◇90년대생 말과 행동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이렇게만 보면 언론계 내 90년대생의 모습은 뭔가 다르다. 정말 이들이 문제인 것일까. 오히려 이 같은 말과 행동들보다 언론계의 공고하고도,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진 않을까. 실제 앞서 허리연차 기자들이 90년대생을 두고 지적한 대부분은 이와 관련된 문제다. 가장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이 언론사였고, 사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젠더’에 대한 인식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공정성’ 측면에서 가장 비전문적인 인사 시스템을 갖춘 곳이 언론계란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현 중간관리자급 기자들도 공유해온 문제의식이다. 다만 허리연차이자 ‘낀 세대’로서 말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젠 90년대생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언론계에서 벌어지는 90년대생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단순히 이들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기자 위상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경우에 가깝다.


G 기자는 “꼭 이 세대의 특징이라기보다 미디어 산업 지형이 변하면서 업계가 어려워지고 언론사와 기자 위상이 떨어지는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윗세대는 누릴 거 다 누렸지만 복지수준은 점점 후퇴한다. 기레기 소리 들으며 취재하는데 안에선 쪼아대기나 한다’는 생각아닐까”라고 진단했다.  


언론사들이 영상 등 비기자 직군 영입을 늘리고 있고, 수습기자들조차 강력한 ‘재사회화’ 과정인 ‘하리꼬미’를 겪지 않으면서 언론사 내 의견표현이나 의사결정 방식이 다변화할 소지도 있다.


◇더 많아질 90년대생 그들의 목소리는?
언론재단이 발간한 ‘2018 언론연감’에 따르면 2017년 신문사 종사자 중 29세 이하 비율은 11.7%(4971명)였다. 30~34세 14.9%, 35~39세 16.2%, 40~44세 17.1%, 45~49세 16.2%, 50세 이상이 24.0%였다. 90년대생은 이중 29세 이하에 속한다. 현 신문사 종사자 중에선 가장 적은 비율이다. 하지만 50세 이상 비율이 가장 높다. 이들이 10년 내 퇴임하면 주된 충원 연령대가 어디에 해당할진 자명하다.


향후 언론계 바통을 이어받을 90년대생들은 조직문화 전반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었다. 신문사 디지털부서 J 인턴기자는 “내 일에 대한 충성도는 있지만 내 시간을 빼앗기면서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크다”면서 “요즘 20대는 처음부터 ‘워라밸’이 되는 직장을 찾고 같은 세대끼리 ‘으쌰으쌰’하며 일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 자기 성취를 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회사보다 규율이 강한 언론사에선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답답함이 크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회식을 통해서만 ‘소통’이 가능했던 기존 뉴스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역시 재고할 상황일 수 있다. 신문사 취재부서 K 신입기자는 “회식은 없애지 않는 이상 강제나 마찬가지”라며 “팀장이 꼰대처럼 보일까봐 싫으면 안와도 되고 중간에 가도 된다고 하지만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라곤 못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언론사 디지털부서 비기자직군 L 씨는 “회식 1차에서 술을 많이 마셔서 먼저 집에 갔더니 다음날 팀장이 핀잔을 주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채용 과정 등 기존 인사와 의사결정 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 역시 고민해야 될 지점으로 보인다. 디지털부서 20대 중반의 M 기자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때와 들어와 일할 때 기자로서 필요한 자질부터 큰 차이가 있다. 준비할 땐 신문을 보며 공부했는데 선배들은 신문 밖의 사고를 원하더라”면서 “최소한 디지털팀의 의사결정 체계는 혁신적으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신문사 디지털부서 팀장인 N 기자는 “90년대생과 함께 일하려면 이들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라는 물음이 들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며 “기자의 전문성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이제 정말 젊은 기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시대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회사가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승영·김달아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