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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목소리'가 사라져버렸다

침묵하는 뉴스룸, 최악의 뉴스룸... 익명게시판만 뜨거운 현실

최승영 기자  2019.03.27 11: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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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를 하다 보면 고칠 일도 있고 정정보도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무런 토론이 없다는 거다. 최근에 회사 보도를 두고 큰 논란이 있었다. 당연히 논의가 있어야 했는데 삭제하고 끝내버렸다. 공정보도위원회(공보위)도 아무 말이 없고 공유된 것도 없었다. 답답함을 느낀다.”


인터넷매체 주니어기자 A씨는 지난 22일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이 같이 밝혔다. “아무런 말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기자 개인 차원으로 환원되는 구조”, “편집회의 결정이 일방 통보되는 방식”부터 “너무 바빠서인지 다들 서로의 보도에 별 관심이 없다”는 말도 함께 나왔다. 그는 “얘길하면 하나마나한 소릴 한다는 분위기가 된다. 이 매체에서 벗어나면 될까? 나이브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편집국이 특별할 거라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계 전반이 조용해졌다. 편집·보도국 분위기에 대한 얘기다. “확실히 편집국에서 싸우거나 큰소리 나는 게 줄어든 건 맞는 거 같다. 기사 때문에 다투는 일? 내 기억으론 언젠지 모르겠다. 사회가 달라진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지금 (분위기가) 바람직한 건진 잘 모르겠다.(신문사 17년차 B기자)” 토론과 논쟁이 사라진 자리엔 지시와 이행이 들어앉았다.


“최악의 뉴스룸은 침묵하는 뉴스룸”이란 말이 어느덧 일상이 돼버린 언론 현실. 공보위 같은 사내 보도견제 장치가 존재하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분출하고 있다. 특히 경영 논리에 잠식된 언론사에서 주니어 기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대다수 주요 매체에선 토론과 언쟁을 제도화한 장치가 이미 존재한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거나 노조가 존재하는 지상파방송사,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 종합일간지, 경제지, 인터넷매체 등에선 별도 독립기구를 두고 있다. 공정보도위원회, 공정방송위원회, 독립언론실천위원회, 진보언론실천위원회,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바른언론실천위원회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10~20명 내외 기자가 정기(3주~분기)·비정기적으로 자사 보도를 비판·견제하는 역할은 동일하다. 회사별 활성화 정도엔 차이가 있지만 제도화된 사내 보도견제의 필요성,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에도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종합일간지 C노조위원장은 “지난해까지 (공보위) 보고서가 뜸했는데 내부 견제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 쏟아졌다”면서 “언론 본령과 관련된 만큼 강화는 당연하고 지난달 간만에 보고서를 냈다. 올해는 최소 격달 주기로 보고서를 내는 걸로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종합편성채널 D노조위원장은 “공보위가 유명무실하냐 잘 돌아가냐와 별개로 의사결정권자에게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통로가 구조로서 담보됐냐는 게 가장 중요하다 본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1987년 언론계의 잇따른 노조 창립 정신과 궤를 같이 하며 시작된 기자들의 공보위 활동은 현재 여러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매일매일의 보도들을 일일이 다루기엔 주기가 너무 길고, 전임이 아닌 기자들이 업무와 병행하기엔 공보위원 활동이 버겁다는 현실이 있다. 아울러 간부들에 대한 청문회 형식의 공보위가 ‘하루만 버티면 되는 자리’로 변질되고 별다른 구속력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공식 채널은 마련돼 있지만 이행할 이유의 힘이 떨어진다면 기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긴 쉽지 않다. 이와 관련 보도 등을 포함한 편집·보도국장에 대한 종합적 평가라 할 ‘임명동의제’는 일부 지상파와 종합일간지에만 도입돼 있을 뿐이다.



최근 기자 80여명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무산과 관련해 편집국장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는 일이 있었던 경향신문 E기자는 “매번 편집국장 때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있었던 거 같다. 편집국장 임명은 기자들의 동의 투표를 거치지만 따로 임기를 두진 않고 있는데 재신임 투표 여부에 대한 논의 등도 추가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공보위의 ‘공식성’과 ‘보도 사후 견제’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언론에선 여러 보완 장치를 가동 중이다. KBS는 편집회의에 기자협회장이 참석하고 있고, MBC도 최근 단협에 평기자들의 편집회의 참여 규정을 넣었다. SBS는 기자협회장이나 노조 공방위원장이 필요시 참여할 수 있다. 한겨레신문도 단협상 노조 미디어국장이 언제든 편집회의를 참관할 수 있다.


SBS는 노조 공정방송위원회와 기자협회를 중심으로 자사 보도에 대한 견제활동을 하되 별도로 익명게시판을 운영한다. 게시판은 오랜 기간 실명으로 운영되다가 현 보도본부장 선임 초기 익명과 부분 실명(필명) 등에 대한 기자협회 투표를 거쳐 현재 완전 익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도국 편집회의 결과가 하루 두 번 공지되고 기사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이 오간다. 최근 SBS 기자 출신 한정원 청와대 행정관의 이직에 대한 비판보도가 의견이 반영된 대표 사례다.


SBS 허리연차 F기자는 “익명 게시판답게 항상 수준 높고 문제의식 가득한 의견이 나오는 건 아니다. 매일 활동이 활발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의견제시 통로가 있고 의견이 나오면 논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도부가 굉장히 많이 의식을 한다. 게시글마다 담당 부장이 일일이 답을 달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너무 미주알고주알 다 답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도 온라인상 익명 게시판을 운영 중이고, 한국일보도 CMS상에 공보위(민실위)가 운영하는 익명 코너를 만들어 내부 의견수렴을 할 계획이다.


JTBC는 사장과 기자들의 샌드위치 미팅을 정례화해 소통하고 있다. 격주로 점심시간을 할애해 직책 직급에 상관 없이 기자들이 참석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자리다. 전영희 중앙·JTBC 통합 노조위원장은 “논의할 내용을 사전에 어느 정도 정리해서 참석하고 제작은 물론 그 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식”이라며 “기자들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가짜뉴스나 악플 대응에 대해 얘기한 사례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어 “보도 최종결정권자인 사장이 와서 평기자들 얘길 듣는 거니 나쁘게 평가하는 경우는 못 들은 거 같다”고 부연했다.


공식적·비공식적 뉴스룸 내 소통 노력에서 나아가 언론사가 주니어 기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론과 논쟁이 단절된 데는 사회 전반의 변화와 기자 위상 추락, 업무량 비약적 증가, 기수문화 붕괴, 언론사 내 세대갈등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원에는 경영 논리에 잠식된 언론사 뉴스룸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언론사 내 주니어 기자들은 맡은 일과 어린 연차 탓에 이 지점에서 가장 언론 본령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언론사의 의견 수렴 창구는 여전히 이들에게 충분히 오픈돼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주니어 기자들은 콘텐츠 단위를 넘어선 회사 방향성에 대한 제안은 무시되기가 십상이고, 회사·기자협회·노조 등 공식적인 조직의 우산 아래가 아니고선 소통이 소통으로 끝나버린다는 토로를 하고 있다. 종합일간지 주니어기자 G씨는 “간부 선배한테 어떤 제안이나 문제제기를 한다. 들어는 주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 몇 번 되풀이되면 개인이 계속 주장하는 모양새가 되고 나만 이상한 애가 된다. 결국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향신문은 최근 내홍을 계기로 평기자들의 주장을 반영한 ‘미래논의 기구 설립’에 대한 가닥을 잡은 경우다. 평기자들 성명과 관련해 지난 22일 편집국장은 “충분한 소통과 피드백을 못해준 책임은 편집국 대표인 저에게 있다. 총체적 책임이 국장에게 있다는 뜻을 임명권자에게 전할 생각”이라고 했고, 이후 기자협회 지회장, 독실위원장과 간사 등이 사장과 만났다. “불명예 퇴진이 되지 않도록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지켜보자”는 국장 거취 관련 얘기와 함께 당초 기자들의 핵심 요구인 ‘미래논의 기구’ 설립에 대해서도 말이 나왔다. 최근 경향 독실위는 기존 청문회 방식의 위원회 운영 개편도 추진 중이다.  


경향신문 H기자는 “편집국장 사퇴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독립 언론으로서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갈지가 기자들 요구였다. ‘미래 기구’에 대해 ‘기자들이 내놓은 안을 보고 고민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장을 열어주겠다’는 사장의 답이 있었다”고 전했다.


기사는 물론 디지털 혁신과 새로운 수익모델 창출 등 언론 위기를 타개할 현안들에도 주니어 기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문사 주니어기자 I씨는 “주인 없는 회사들의 경영진은 2~3년 실적이 장기적인 성패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주가 있는 언론사에서도 간부들보다 젊은 기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거에 민감하지 않겠나. 분명한 건 우리들이 지금 의사결정권을 가진 분들보다 훨씬 오래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거다. 우리가 무조건 맞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더 참여시키고 귀 기울이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