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기자 2019.03.06 00:29:1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요약하는 말로 이보다 적당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순풍에 돛단 듯 하던 회담장 분위기와 충격적인 ‘합의 결렬’ 소식, 한밤에 열린 기자회견까지. 취재진은 한 시도 긴장을 놓지 못한 채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을 숨 가쁘게 좇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숨을 고르며 한반도 비핵화에 관해 더 복잡해진 셈법과 결코 쉽지 않은 전망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회담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하노이 현지의 취재진은 북미 정상이 가벼운 농담과 스킨십을 할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읽었다. 국내외를 막론한 대부분의 언론 역시 ‘빅딜’이냐 ‘스몰딜’이냐 수위의 차이가 있었을 뿐, ‘하노이 선언’이라는 합의문 도출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장용훈 연합뉴스 한반도부장(북한전문기자)은 “사전 실무협상 과정에서 흘러나온 얘기들이나 전반적인 흐름을 봤을 때 이번 회담은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라며 “그래서 확대회담이 길어지고 오찬이 미뤄진다고 했을 때 협상 결렬의 신호라기보다는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산고일 것이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7년차 통일외교전문기자인 왕선택 YTN 기자 역시 “비핵화 로드맵이 포함된 합의문 채택”을 기대하던 상황이었다. 왕 기자는 “합의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전망은 합리적 추론이었고 합당한 징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어떤 선언도, 합의문도 없었다. 결렬 소식이 전해지자, 베트남-소련 우정노동문화궁전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에는 비상이 걸렸다. 기자들은 미리 준비했던 기사들을 뒤엎고 새로 써야 했다.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과 두 정상의 숙소 앞에서 대기하다 경호원들의 움직임을 보며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한 기자들도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서둘러 타전했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문사들은 판을 바꾸느라 정신없었고, 방송사들도 큐시트를 갈아엎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노이 현지 시각으로 자정이 다 되어 전해진 북측의 기자회견 소식에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귀국 준비를 하던 기자들이 한밤중에 때 아닌 질주를 해야 했다. 새벽 3시까지 리포트를 쓴 왕선택 기자는 “마지막까지 아주 혼이 빠졌다”며 “이번 회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회담에 대한 평가는 차분하고 냉정했다. 그는 “이번 상황을 간단히 결렬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가지 긴 과정 속에서 만난 일시적인 장애라고 볼 수 있다”면서 “북한의 반응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과거 몇 년 전에 비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이다.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한국 사회 집단 지성의 수준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용훈 기자도 이번 회담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리용호 외무상의 심야 기자회견이나 이번 회담이 생산적이었다고 홍보한 북한 매체의 보도만 보고 북한의 반응을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장 기자는 “북한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번 회담을 복기하고, 가려던 길이 바른 길이었는지 내부 논의를 거쳐야 앞으로 갈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정치상황이 불안정하고 여러 면에서 유동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될 거라는 예상은 섣부르다고 본다. 정부와 외교안보팀에서도 조심스럽게 지켜보면서 때에 따라 상황을 견인하는 등 대통령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채널A 해설위원으로 하노이 현지에서 생방송을 했던 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은 낙관과 당위에서 벗어나 현실론에 입각한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신 팀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서로가 만족할만한 합의를 이루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멀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북미 정상이 다시 마주앉아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도 비핵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숙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본질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불확실한 때일수록 언론 소비자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북미 회담 결렬이 북한 내부 정치와 미국 워싱턴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두 나라의 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 다양한 이슈에 가지들을 뻗쳐놓고 하나하나 팩트를 달아가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언론의 ‘원론’ 아닐까.”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