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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간만에 휴가 내서 일본 왔… 는데 지진 났다고?

휴가지서 '돌발 기사' 쓴 기자들

김고은 기자  2018.11.21 14: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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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만 있으면 어디든 일터가 될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여기, 휴가를 떠났다 예기치 않은 사건을 만나 기사를 써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의 ‘디지털 노(勞)마드’ 기자들이 있다.


유지향 KBS 기자는 지난 9월 휴가차 떠난 일본 홋카이도에서 규모 6.7의 지진을 겪었다. 진앙지인 아쓰마초에선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강진이었다. 당시 진앙지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노보리베츠에 머물고 있던 유 기자는 새벽 3시쯤 건물 외벽이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설상가상 전기까지 나가면서 사방은 암흑천지였고, 건물을 뒤흔드는 여진은 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공항은 폐쇄되고 주요 열차 운행과 고속도로 통행까지 금지됐다.



꼼짝없이 고립된 유 기자는 지진 발생 이튿날, KBS 9시 뉴스<사진>와 전화로 연결해 고립 상황을 전했다. 마침 외교부를 출입 중이던 유 기자는 현지 상황과 함께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취합해 전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귀국편 비행기가 예정대로 뜨면서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생애 처음 경험한 대규모 지진이 남긴 의미는 각별하다. “외신으로 규모 얼마의 지진 소식을 접할 때 우리나라 일이 아니라 기사 가치가 낮게 느껴졌는데,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얼마 전엔 사이판 태풍 때문에 고립됐던 한국인 관광객들을 수송기로 이송한 뉴스를 처리하는데, 공항에 쪼그려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때의 기억이 나더라고요. 제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당사자들의 고민 같은 것을 더 집중적으로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가지에서 자연재해를 만난 것도 억울한데 기사까지 써야 했던 기구한 운명은 또 있다. 김수영 SBS 기자와 정유경 한겨레 기자는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롬복섬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화산 분화로 공항에서 발이 묶인 상황을 각자 기사로 썼다. 지난 2016년 1월 제주도로 휴가를 갔다 폭설 때문에 3박4일간 공항에 고립됐던 김형준 한국일보 기자도 마치 재난영화 같은 현장의 상황을 생생한 디지털 기사와 동영상으로 전달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런가하면 휴가지에서 뜻밖의 상황을 만나 기자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공성윤 시사저널 기자는 지난 9월 어머니와 함께 뉴욕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이돌그룹 BTS가 유엔본부에서 연설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휴가와 당직 근무가 겹쳤던 공 기자는 이 소식을 디지털 기사로 전하기로 하고 유엔본부 주변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맨해튼 거리에서 리포트하는 그를 어머니가 찍어준 동영상도 유튜브에 올렸다. 거리에서 리포트를 하고 있을 때 미국 라디오 방송국 ‘웨스트우드 원’의 방송진행자 스톡스 닐슨이 관심을 보이며 BTS에 대해 질문을 해오기도 했다. 공 기자는 “굉장히 의미 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공 기자는 꼭 근무시간이 아니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사건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다. “딱히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자가 좋아서 된 거고, 특수한 직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시급한 아이템이 생겼을 때 펜이나 마이크를 잡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회 공익에 일말이나마 기여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