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가 지난 23일 KBS 차기 사장 후보인 이정옥 전 KBS 글로벌센터장, 김진수 KBS 해설국장, 양승동 현 KBS 사장을 차례로 만나 사장 출마 이유와 정책 비전, KBS 혁신 방안 등을 들었다. 후보자들은 오는 27일 170명 규모의 시민자문단 앞에서 정책발표회를 연다. KBS 이사회는 31일 후보자 면접(60%)과 시민자문단 평가(40%)를 반영해 최종 후보자 1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예정이다.
차기 사장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김진수 KBS 해설국장은 1987년(14기) KBS에 기자로 입사해 중국 상해 특파원, 해설위원 등을 지낸 인물이다. 김진수 후보자는 새 체제의 개혁 작업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지난 9년의 산물로 KBS 내부에 진영화, 구도화가 고착됐다며 분열이 아닌 통합을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김진수 후보자와의 일문일답.
-KBS 사장으로 출마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지난 두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 등에 대해서 거의 완벽하게 지금 언론노조 KBS본부나 새 체제의 방향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동의하는데 왜 나왔느냐에 답해보면 지난 9년 두 개의 노조가 생기면서 과거 경영진들이 한쪽 노조를 이용해서 회사 경영을 해왔다. 그러면서 다른 노조는 배제했었는데 지금 형국을 보니 새 체제 역시 한쪽 노조의 지지를 받는 구도인 것 같더라. 물론 경영을 하는 데 있어 특정노조에 기대거나 유착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노영방송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데 다만 일부에선 한쪽 노조의 지지를 받는 내부의 구도, 진영화에 대해 걱정이 많다. 그래서 새 체제가 6개월밖에 안 됐지만 3년 더 이렇게 간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에 대해 걱정이 되더라. 제가 보는 관점에선 지난 시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KBS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됐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지난 9년이 과거와는 또 달랐다. 과거에는 선배들이 조금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할 줄 알았는데 지난 9년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느닷없이 좌파로 규정하고 매도하고 징계하고 배제해 다들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저는 그 상처가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가장 큰 상처는 뭐냐면 알게 모르게 진영화를 시켜놓은 거다. ‘구도적 밀착’이라는 말이 제일 정확할 것 같은데 그런 진영화, 구도화가 점점 고착되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다. 새 체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새 체제에서 구성원들의 선한 의지와 건강함을 믿고 있지만 이런 진영화, 구도화가 점점 고착되는 것엔 걱정이 든다. 지금의 상황이 3년 더 진행됐을 때가 더 걱정이다. 지금 정부야 방송 장악 의도가 없는 건 물론이고 특별한 청탁이나 간섭이 별로 없지만 이 정부가 계속되는 건 아니잖나. 또 다른 상황이 오면 진영이 바뀌어서 또 한쪽은 배제되는 식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영논리에 갇힐 게 뻔하다. 이 구도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노력한다고 될까. 사장 선임 과정만 보더라도 특정 노조 구성원의 80%는 현 사장 재임 기간 변화했다고 답하고, 다른 쪽에선 연임은 안 된다며 연임 저지 백서를 만들고 있다. 제가 나오게 된 동기는 여기 있다. 진영논리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어서다. 그러나 저 역시 이 구도를 탈피하는 게 과연 가능한지 의구심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정상화의 첫발이라고 믿기 때문에 어렵게 결심을 하고 나왔다.”
-다른 후보와의 변별력이 거기 있다고 보나.
“일단 저는 노조 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잘났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래서 사실 지금 체제가 노조 출신 간부를 쓰는 것과 제가 노조 출신 간부를 쓰는 것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파업에 참여를 안 했다거나 과거 보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 방송 경험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회사 일에, 개혁에 동참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제가 기준을 정하기는 모호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말을 들어서 세심하게 인사를 한다면 그런 부분에서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 사람을 넓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이걸 준비하다 보니 새로 공부해야 되는 게 많다. 얻은 결론은 공영방송의 제1 책무는 좋은 콘텐츠라는 거다. 좋은 콘텐츠는 사람이 만든다. 그런데 지금처럼 쪼개져 있어서는 불가능하다. 9년 동안 어려움을 겪은 상황에서 사람을 재배치하고 조직을 보강하는 게 정말 필요하다. 한정된 재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제가 볼 때는 KBS 내에 숨은 인재들이 엄청 많다고 본다. 다만 지금 당장 통합하기엔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왜냐하면 특히 후배들이 너무 긴 기간을 사람한테 상처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같이 일하라고 하면 그건 후배들이 견딜 수가 없을 거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인재들은 따로 모으든지 적절하게 배치해 활용해야 할 것 같다. 확실한 건 그 사람들을 방송 일뿐만 아니라 특히 개혁 작업에 참여를 시켜야 한다는 거다. 크게 자신은 없다. 하지만 해볼 만한 시도다. 지금 진실과 미래위원회가 부사장이 위원장을 맡고 개혁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개혁만 전담할 수 있도록 특임본부를 하나 만들었으면 한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차근차근 할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과거청산도 하고 진실도 기록하고 그걸 교육용 자료로도 만들어서 교육도 하고 미래 제도도 만드는 식으로 진미위를 뒷받침할 회사 조직을 마련해서 거기에 지금 배제됐던 사람들을 함께 동참시키고 싶다. 특히 기록하는 데 있어서 일방의 기록이었다는 이유로 바로 부정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일방의 기록이 아니게끔 만들고 싶다.”
-쉬운 작업이 아닐 것 같다.
“쉽지 않지만 이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존경하는 선배들에게 이런 생각을 설명하면서 ‘근데 가능합니까? 제가 꿈을 꾸는 건 아닙니까?’ 물어볼 때가 있다. 한 선배가 그러더라. ‘이 사람아 꿈을 꿔야지.’라고.”
-KBS는 지난 4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정상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7개월간의 작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적폐 청산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나.
“저는 당연히 할일을 했다고 본다. 촛불혁명에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 가장 큰 화두였다. 특히 언론 개혁에는 KBS 개혁도 들어 있다고 본다. 개혁의 첫 단계는 과거 청산과 단절이다. 진미위도 그런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 아니겠나. 과거 청산뿐만 아니라 진실을 기록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나 규범, 문화를 마련하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
-미디어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KBS는 적절한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장으로 취임하면 어떻게 혁신할 계획인가.
“모든 게 좋은 콘텐츠로 귀결된다. 돈 버는 것도 좋은 콘텐츠를 위해 버는 거고, 좋은 콘텐츠가 나오면 또 돈이 벌린다. 신뢰도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올라간다. 신뢰도를 올리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신뢰도, 영향력, 돈이 다 따라온다. 좋은 콘텐츠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이다. 다양한, 그리고 변화가 빠른 그 요구를 파악해서 개발하고 기획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 개발이나 기획팀에 인력과 돈을 투입해서라도 변화가 빠른 시청자들의 요구를 최전선에서 접하게 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시사나 보도에서 좋은 콘텐츠는 현안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 맞선다는 생각만 하면 안 된다. 조직을 맞서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방향과 좌표를 던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뢰도와 영향력은 따라온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고 인적 자원을 배분하는 데 승부처가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문제다. 조직을 만들어놓는다고 사람들이 안 하던 일을 할 것인지 의구심이 있다. 그럼에도 숨은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그릇을 만들어 담고 움직일지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본다.”
-디지털 혁신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있나.
“KBS가 지상파 방송이지만 케이블도 있고 인터넷 모바일 채널도 있다. 우리도 어떻게 보면 다매체다. 다만 우리는 콘텐츠를 지상파 위주로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한쪽에서 그런 논쟁이 계속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우리 방송 콘텐츠를 디지털 콘텐츠로 가공하는 게 길이다, 혹은 디지털용으로 따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논쟁이라면 저는 방송 콘텐츠를 디지털 콘텐츠 화하는 게 우리 회사에 맞다고 본다. 방송 콘텐츠가 중심이 돼서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뽑아내 재가공, 재창조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여러 플랫폼 전문가들이 참여해 어떻게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할지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실제로 제작하고 유통하는 융합·통합 모델이 강화돼야 한다. 우리 딸이 28살인데 TV를 안 본다. 그 사람들을 TV 앞에 데려오게 할 방법도, 이유도 없다. 다만 KBS의 어떤 콘텐츠는 볼만하더라, 이 정도로만 생각해줘도 된다. 모 방송사에 앵커룸 브리핑이나 팩트체크, 비하인드 뉴스가 있지 않나. 나는 그 코너들이 뉴스의 경쟁력이라고 본다. 왜 경쟁력이냐면 그건 인터넷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길이도 적당하다. 인터넷에 있는 걸 정리하지 말고 인터넷에 없는 걸 끊임없이 고민해서 만들고 적절한 크기로 유통하는 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뉴스룸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보도본부 내에 뉴스개선 TF가 만들어졌고 지금 개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지만 방향은 맞는 것 같다. 다만 파업 후유증인지 요즘 세대들의 세태인지 분위기가 굉장히 느슨하게 느껴진다. 수평과 자유를 강조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데 그 개념이 잘못 인식되는 건 아닌가 한다. 치열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시와 일사불란함이 사라졌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실무 제작자한테 대폭 권한을 줘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너무 단계가 많고 그래서 동기 부여가 안 되니까. 자율성은 자율성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창의성 때문에 부여한다고 보는데 드라마 같은 영역은 분명히 창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율성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보도나 시사는 일사불란하고 치열해야 한다. 발제할 때까지 데스크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기다리고, 일선 기자가 취재 지시를 받았는데도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반발하면 안 된다. 물론 부당한 지시에는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일상적인 지시인데도 반발하면 보도나 시사 조직은 안 돌아간다. 9시 뉴스를 심층화하려면, 깊이 있는 내용을 취재하려면 데스크와 실무제작자가 치열해야 하고 한편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게 저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9년이 남겨놓은 상처가 크고, 세대가 바뀌기도 했다. 제가 말한 내용을 구태로 보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조직을 쪼개본다거나 개혁에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변해야 하는 건 그런 마인드라고 본다. 어느 한 순간 일하는 재미나 보람을 느낄 만한 사건이 터져 기자들이 그런 마인드를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좋겠다. 저는 모 방송사에서 한창 국정농단을 보도할 때 기자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건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기자 스스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었다. 그 순간을 찾아내야 한다. 단순히 지시하고 복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불이 붙을 만한 순간이 온다면 KBS 기자들도 자연스럽게 제 길을 찾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지금 제가 얘기한 대부분은 다른 방송의 고민과 겹치는 게 많을 거다. 공영방송인으로서 특히 얘기하고 싶은 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런데 지금은 현 정권이 장악을 하려는 의도가 없으니 별 의미가 없다. 문제는 장악할 의도가 있는 권력이 또 등장했을 때이다. 그래서 제도가 중요하다. 편성위원회, 공정방송위원회, 주요 국장 임면동의제, 본부장 중간평가제 등은 한순간에 무력화될 수 있다. 한 가지 더 보태 사장 소환제가 있으면 한다. 어떤 요건을 정해서 사장이 공정성 공익성 독립성에 심대한 훼손을 했을 경우 구성원들이 소환해 이사회에 해임을 제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한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이것만 남아도 좋을 것이다. 방송법에 들어간다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