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정성진 고문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정 고문과 함께 기자생활을 했던 이성춘 제1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의 추도사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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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고문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그 병(病)이 빠른 시일 안에 완쾌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급서(急逝)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비보(悲報)였소.
언론계 현역시절은 물론 퇴역한 후에도 만나면 “내가 앞으로 몇 년이라도 더 살고 싶은 것은 이 나라에 독버섯처럼 만연한 부정 비리, 권력남용, 탈법(脫法) 밀실거래 등을 조금이라도 척결하려는 것”이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경상도 사투리로 기염을 토하곤 하지 않았소.
그랬던 정 고문이 이토록 허망하게 사랑하는 자손들과 친구들을 두고 홀연히 기세(棄世)할 수 있겠소.
언론계의 경우 정 고문은 필자보다 조금 늦게 진입했지만 1960년대 중반 국회기자실에서 만난 이후 단번에 이야기가 통하는 소위 ‘기자 친구’가 됐소이다.
정 고문은 서울신문과 중앙일보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거쳐 기독교방송으로 옮겨 ‘방송기자’로 변신했소. 그러나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자세와 사명감, 취재 보도자세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소.
더구나 독특한 개성으로 정 고문은 근무했던 신문사와 방송사 그리고 기자실에서는 물론 취재대상인 정치인들 고위관리들에게도 단연 돋보였었소.
정 고문은 불의(不義), 부정 비리 등에 전연 타협과 양보나 관용이 없었소. 그야말로 정보가 입수되면 무조건 쓰고 보도한다는 자세였소. 정 고문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고위 정치인이나 장차관, 기관장 등이 권력을 남용해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고 국민위에 군림하고 국민을 괴롭히는 행태였음은 모두가 알고 있었소.
기자들 사이에 불리는 정 고문의 별명은 ‘열혈파(熱血派)’ ‘단 칼’ ‘정(鄭) 칼.’ 기자실에서 특정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면 정 고문은 언제나 정의파(正義派)의 기수가 되어 끝까지 원칙론을 고수하지 않았소.
우리는 정 고문이 1970년대 중·후반기, 즉 어떠한 비판은커녕 조그마한 반대도 허용하지 않은 엄혹하고 암울한 강권통치(强權統治)하에서 권력을 해학(諧謔)하고 야유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가십(gossip) 프로를 진행해 정치인들과 고위 관리들뿐만 아니라 많은 청취자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을 기억하고 있소.
CBS 라디오는 엄혹한 유신 후반기 2년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8시30분~9시까지 30분간 시사뉴스와 해설 대담 등의 프로를 진행했다. 이 프로 막바지에 ‘3분간의 정치가십’ 코너를 마련했던 것.
가십 진행자는 당시 국회 취재반장인 정성진 정치부 차장. 정 차장은 전날 자신과 국회정당 취재팀이 취재한 자료를 모아 가십코너를 진행한 것.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여러 차례 야단 질책 지탄 꼬집기가 되풀이 되어 라디오 청취자들까지 흥분 긴장케 하고 말았소.
가십의 주인공들은 초기 3~5명에서 8~10여명으로 늘더니 1년이 지나며 10~20명으로 증가했고 1979년 10월26일 1~2개월 전에는 25~27명까지 늘어나는 기록을 세웠었다.
유신 막바지에 이 프로의 최고 애청자들은 정치인, 장차관들이었소. 매일 이들은 몰래 또는 공개적으로 청취, 자기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으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는 얘기들이 파다하게 전해질 정도였다.
이즈음 역시 국회를 출입하던 필자는 이 프로를 매일 청취하면서 정 고문의 멘토, 방송보도 비평가 역할을 맡았었지요. 매일 국회기자실에서 만나면 가십내용과 말의 속도, 어조(語調)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곤 했었소. 당시 정 고문이 필자에게 여러 차례 한 말이 있었소. “3분 안에 30명 이상을 등장시키는 기록을 세우겠다”는 것. 그때마다 필자는 반론을 펴곤 했소. “문제아 30명 이상을 따발총으로 단번에 드르륵 갈기면 속은 잠시 시원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가십의 질(質)과 내용(진실)이다.”
이러한 정 고문의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과 야유에 대해 권력 쪽에서 소리없이 보복 반격을 준비할 줄 누가 알았겠소.
유신 막바지 제18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자격으로 미국에 갔다가 귀로에 결혼 후 근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부인을 위해 산 싸구려 다이아 반지를 값비싼 귀금속 밀수로 둔갑시킨 것. 결과는 김포공항에서 연행 구속에다 기협회장직 강제사퇴와 언론계(방송계)에서 추방이었소.
12·12사태와 5·18로 권력을 탈취한 신군부는 정 고문에게 결정적으로 타격을 가했소. 유언비어를 제조해서 전파, 사회불안감 조성과 민심을 왜곡시켰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우고 연행해 무자비한 곤욕을 치르게 한 것.
이러한 불법적, 反인권적인 권력의 압력과 협박에도 정 고문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소. 저들은 물리적인 억압으로 정 고문의 몸(건강)을 해쳤지만 정신만은 억누르지도 빼앗지도 못했소.
정 고문! 이제 하늘나라에서 앞서간 부인과 함께 편안히 쉬시오.
이성춘(제1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전 한국일보 이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