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영, 김달아 기자 2018.08.22 15:51:17

# “회사가 주최하는 행사엔 모든 기자들이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지역 일간지에서 일하는 A기자는 미인대회 등 1년에 5~6번 열리는 각종 행사 때마다 동원돼 일을 했다고 말했다. A기자는 “예외는 없다”면서 “행사가 치러지는 주엔 유일하게 쉬는 토요일도 반납”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특히 평일 오후에 열리는 각종 시상식은 취재에 큰 영향을 끼친다. A기자는 “회사에서 교육대상 체육대상 등 각종 상들을 수여하는데 그것도 기자들이 다 참석해야 한다”며 “문제는 시상식들이 오후에 열려 취재할 시간이 빠듯하다는 점이다. 그 날은 되도록 오전 안에 취재를 끝내거나 시상식이 끝난 후 급하게 기사를 쓰곤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크다. A기자는 “중요한 행사면 몰라도 자잘한 시상식까지 참석해야 하나 종종 의문이 든다”며 “기자는 취재하는 데 더 시간을 써야 하지 않나. 기자들 사이에 불만은 높은데 회사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 지역 일간지에서 근무하는 B기자도 비슷하다. B기자가 속한 신문사 역시 자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모든 기자를 의무적으로 참석시킨다. B기자는 “불만은 많은데 티를 낼 수는 없다”며 “당연히 가야 한다는 분위기다. 몇 년 전 경영진이 행사 끝날 무렵까지 기자들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타박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 행사 때마다 무조건 참석하라는 단체 문자까지 내려온다”고 말했다.
이 일간지에선 건설사인 모기업 주최 행사에 기자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B기자는 “모델하우스 개관식에서 1시간 박수치고 나오는데 이건 진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역 언론사에선 이런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기자의 말처럼 자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기자들을 동원하는 지역 언론사가 많다. 기자들은 취재 보다는 대개 행사 진행을 보조하거나 출입처 인사를 응대하고, 참석자가 많아 보이도록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충청지역 일간지에 근무하는 C기자는 “취재 인력도 있지만 기자 대부분은 행사장에 온 출입처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자리 메우는 일을 한다”며 “이 지역에선 우리 뿐 아니라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신문사에선 기자들이 직접 행사 진행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천경기지역 일간지에서 일하는 D기자도 “저희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마라톤처럼 규모가 큰 체육행사는 취재 안 하는 기자들도 가서 도와야 하는 상황”이라며 “가장 큰 행사엔 본사 기자들이 거의 다 참석하고 지역별 행사엔 권역에 있는 기자들이 나가는 식이다. 예전엔 기자들이 행사장에서 기념품 나눠주고 선물 포장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없어졌고 머릿수를 채우거나 출입처 손님들을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은 언론사의 이런 행태를 ‘갑질’이라고 표현했다. 수당도 없이 휴일에 일을 시키고, ‘조직이 생존해야 기자가 있을 수 있다’는 논리로 기자 동원을 당연시하고 있어서다. 기자이기 이전에 회사 구성원이라는 논리 앞에 행사 참여를 거절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팽배하다.
반면 일부 기자들은 기자가 언론사 주최 행사에 나가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제주지역 일간지에서 일하는 E기자는 “기획실, 광고국은 참여하는데 편집국이라고 나가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지역 언론사는 인원이 많은 조직이 아니잖나. 현장 상황을 잘 아는 기자들이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원지역 일간지의 F기자도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만이 기자 업무라고 생각하면 (행사 동원은) 해선 안 되는 일”이라면서도 “기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행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사원으로서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앞으로도 쉽게 바뀌진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다수 기자들은 언론사가 편집국과 분리돼 행사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서 기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 출입처 귀빈 모시기인데 취재원과의 ‘불가근 불가원’ 원칙에 미묘하게 어긋날 뿐 아니라 잦은 행사 차출이 기사보다 회사의 수익성을 더 중시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A기자는 “행사에 국회의원이나 도청 고위직, 기업체 사람들이 오면 안내도 하고 아는 체를 하는 게 기자 역할이다. 그런 행동이 쌓이고 쌓이면 온정주의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언론 역할을 하는 편집국과 행사를 하는 사업부가 확실히 나눠져야 한다. 일본 언론사처럼 행사를 많이 하더라도 사업국이 대부분의 일을 알아서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