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밖엔 초록 물결이 가득했다. 과거 벌건 민둥산이었을 곳에 어른 키만큼 자란 나무들이 지평선까지 빼곡했다. 시속 70km로 천천히 달리는 버스 안에선 모든 것이 잘 보였다. 개성 시가지와 근처 송악산이 그랬고, 예성강이 굽이치는 모습 역시 그랬다. 곳곳이 거친 땜질 자국이지만 개성~평양 고속도로는 바르고 곧았다. 200km도 안 되는 이 길을 달리면 그 끝엔 평양이었다. 방북길에 오른 26명의 취재진은 남다른 감회를 안고 각자의 방식대로 풍경을 담고 기록했다. 김희남 SBS 기자는 “평양이 정말 서울과 가깝다고 느꼈다”며 “도로 포장을 우리처럼만 해도 두 시간이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기자단은 평양에서 열리는 제4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선수단과 함께 방북했다. KBS에서 12명, MBC SBS JTBC에서 각각 3명,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강원일보 강원도민일보 통일뉴스에서 각각 1명이 평양 방문 기회를 얻었다. 개성에서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는 건 귀한 일이었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단이 이 길을 이용했지만 극히 소규모였고, 류경 정주영체육관 준공 기념행사로 1000여명이 방북한 2003년 이후 사실상 15년 만이었다. 박지은 강원도민일보 기자는 “강원도 고성이 고향이라 이번 방북의 의미가 남달랐다”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때 여러 생각이 들더라. 평양에서의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마주한 평양엔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미래과학자거리를 비롯해 평양의 강남이라 불리는 창전거리엔 기본 40~50층의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여명거리엔 70층짜리 아파트도 있었다.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대동강변엔 모두 다른 디자인의 고층빌딩이 끝없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고 여유로웠다. 김희남 기자는 “대동강변엔 아침저녁으로 반려견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며 “‘손풍기(휴대용 핸디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더라. 제재 속에서도 장마당을 통해 중국 공산품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도 “전력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10년 전 평양에 들렀던 분 얘기를 들어보니 가장 큰 차이가 건물에 조명이 있다는 것이었다”며 “우리 기준에선 적지만 택시 역시 엄청 늘었다고 하더라. 평양을 많이 오갔던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전보다 민생이 나아진 것 같고 변화의 움직임이 분명히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방북 초기에 이런 평양의 모습을 자유롭게 담기란 쉽지 않았다. 북측 안내원들은 거리나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걸 엄격히 제한했다. 대신 시장이나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시민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가능했다. 김재영 MBC 기자는 “체류기간도 길고 동선도 많아 기자들이 알음알음 담배 핀다, 화장실 간다면서 비공식적으로 평양 시민들과 접촉을 했다”며 “처음엔 그런 접촉마저 북한이 덜 통제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뿌려놓은 사람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데 워낙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다 보니 아닌 걸 알겠더라. 생각보다 북한 사람들이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도 많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이렇게 모은 취재 결과물을 적극 보도했다. 김진호 경향신문 국제전문기자는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양을 가다’라는 제목의 연속 기사를 올리는 한편 페이스북을 통해 평양의 사진을 전했고 이규연 JTBC 국장 역시 ‘스포트라이트’ 페북 페이지를 통해 취재 내용을 화상통화로 전했다. KBS는 지난 14일 평양을 위성으로 연결해 현지에서 북한 소식을 직접 전하는 ‘서울-평양 이원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성윤 KBS 기자는 “평양에 진출해 있는 AP와 북한에 가기 전 계약에 성공했다”며 “다행히 북한에서도 AP 송출시설을 써도 된다고 해 생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미국도 일본도 아닌 평양에서 방송을 하니 숨 막힐 정도로 떨리고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가 무한정일 순 없었다. 9박10일의 일정은 야속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박지은 기자는 “안내해 준 분들과도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질 때 울컥했다”며 “축구대회에 참가한 강릉 주문진중 학생들도 빨리 북한 친구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미래 세대에게 분단의 아픔을 넘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또 이 교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