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18.04.26 10:56:25
신문과 잡지, 인터넷 신문 등의 진흥을 위해 마련된 ‘언론진흥기금’이 고갈 상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이래 6년 간 정부출연금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 거듭되다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당장 언론계에선 취재지원 제한을 비롯한 신문 전반지원 축소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신문과 인터넷 신문 등을 지원해 온 언론진흥기금(기금)이 2018년 말 고갈 위기를 맞는다. 올해 예산을 집행하면 연말 기금잔액은 불과 16억원으로 독립적인 재정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언론재단은 최근 몇 년간 230억원 안팎의 사업비를 투입해 왔는데 이대로라면 대폭 감소한 약 160억원대 예산으로 2019년을 맞게 된다.

기금 고갈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이래 국고출연금이 전무하다시피 한 탓이다. 기금은 국고출연금과 언론재단 법인출연금을 주 재원으로 하는데, 지난 6년 간 국고출연금이 0원에 수렴하면서 언론재단 출연금으로 충당하던 기금이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 2016년 50억원이 국고출연됐지만 국회에서 증액돼 반영된 것이었다. 최근 9년 간 출연 규모를 봐도 언론재단 법인출연 규모는 1032억원이었지만 국고출연은 285억원에 불과했다.
언론재단은 신문등의진흥에관한법률 제34조에 의거 설치된 기금에 대한 국고출연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기금설치의 입법 목적과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공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데도 언론진흥기금은 타 기금규모와 비교해 초라한 수준”이라며 “유럽 등에서도 언론발전을 위해 다양한 직·간접 지원을 하고 있다. 그 공적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금 고갈은 언론사 CMS 지원이나 빅데이터분석시스템 구축, 읽기문화·리터러시 교육 등 언론진흥과 관련한 기존 대형 사업의 축소 역시 불가피해진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기자들에게 와닿는 문제는 기획 취재지원 축소다. 기금은 언론산업 위축,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해외취재가 더 어려워진 국내 언론기자들에게 큰 지원책이 됐고, 기자들은 독자·국민들에게 기사로 부응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 소속 기자 7명과 함께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을 현지 취재해 <4차 산업혁명 특별보고서 ‘로그인 투 매트릭스’> 기획기사를 선보인 류현정 IT조선 취재본부장은 “정말 큰 도움이 된 지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IT분야는 해외 최신기술을 발 빠르게 전하는 게 중요한데 거의 전 부서원이 뛰어들어 세계 곳곳을 뛰어다니며 시리즈를 하고 책까지 냈다”며 “여러 상황이 신문의 장기적인, 깊이 있는 취재를 위협하고 있고, 의미 있는 취재인데도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도 사라진다면 좋은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 날개를 꺾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올해 초 소속 기자 5명과 함께 국내·외 동물원 20곳을 찾아 <한국에는 왜 좋은 동물원이 없을까> 기획기사를 쓴 최우리 한겨레신문 기자는 “평소 할 수 없는, 시간과 돈을 들일 기획을 할 때 재단 취재공모 지원을 기다리게 된다. 상시적인 기획을 하며 매번 돈을 쓰는 건 쉽지 않으니까 정말 사내 경쟁이 치열하다. 현장취재를 가니까 문제의식을 생생히 전할 수 있었고, 해외 동물원 사례를 국내 동물원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첫 언론진흥기금 예산편성이 기존 정부와 다른 노선을 보일지 주목된다. 현재 최대 난항은 기획재정부 예산심의 통과다. 기재부는 몇 년 전부터 기금의 고사를 기정사실화한 모습을 보이며 국고출연 계획을 세우지 않아왔다. ‘사기업인 언론에 왜 지원을 해야하나’, ‘관리주체인 언론재단이나 언론사가 능력껏 채워야 한다’는 게 그간 공공연한 입장이었다.
최근 기재부의 심의 과정을 봐도 이 같은 노선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1차 심의에서 언론재단은 국고출연금 300억원, 법인 출연금 100억원, 사업비 258억원을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국고출연금 0원, 법인 출연금 150억원, 사업비 217억원 감액 조정 등의 판단을 내렸다.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선 한도 외 예산으로 ‘밀리고’, 기재부에선 ‘잘리는’게 기금의 운명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기 계획 심의를 1, 2차까지 했고 6~8월 본예산 심의를 하게 돼 아직 여러 과정이 남았다”며 “면밀하게 봐야겠지만 일단 부처(문체부)에서 요구하는지 안하는지가 중요할 거다. 요청이 오면 본예산 심의를 해 타당한지 봐야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반회계에서 기금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