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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고 꼬인 '5·18 진실' 언론에도 책임 있다

[기고] 김성 전 국방부 5·18특조위 부위원장

김성 전 국방부 5·18특조위 부위원장  2018.02.27 16: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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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전 국방부 5·18특조위 부위원장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특조위는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5·18기간동안 헬기사격이 있었다. △전투기들이 폭탄을 장착하고 출격대기를 한 적은 있으나 그 목표가 광주라는 뚜렷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1985년에는 안전기획부 주도의 80위원회가, 1988년에는 국방부와 보안사령부의 주도로 511연구위원회가 구성되어 군 자료를 수집하고 일부 왜곡·조작하였다는 것을 조사결과로 발표하였다.

 

특조위는 ‘신(新)군부’라는 단어가 다른 군인들을 ‘구(舊)군부’로 치부하여, 그들만이 새롭고 참신한 군인인 것처럼 왜곡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대법원 판결에 따라 보고서에 ‘5·17 내란집단’으로 명시하였으나 별로 보도되지 않았다. 

 

특조위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확실한 근거를 찾아내지 못하였다고 하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보도들이 있었고, 심지어는 ‘무식한 결과를 내놓았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서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특별조사위원들은 각종 쟁점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적 지식과 법의 해석 등까지 검토하며 새벽 1시가 넘도록 논쟁을 벌여 결과를 도출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였다. 그 비판이 진실규명을 위한 진지한 비판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5·18 왜곡조작을 위한 일부 그룹의 무책임한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다.

 

특조위가 구성된 배경은 이렇다. 2016년 광주시 금남로 1가 전일빌딩에서 헬기사격의 탄흔이 발견된데다 2017년 jtbc에서 전투기 폭격대기 의혹이 보도되면서 5·18이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철저히 규명할 것을 지시하여 국방부에 구성되었다. 우리 국군이 정치군인들(5·17내란집단)에게 이용당했던 과거와 단절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국군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헬기사격이나 전투기 폭격은 우세한 공격력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이다. 이것이 선량한 시민들에게 이용되었다면 반인륜적인 행위이기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5·18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로 법적으로는 마무리됐다. 전두환·노태우 등 수괴들은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 뇌물수수죄 등으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등의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조사도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시작으로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1992년 12월(주임검사 김승규)에는 ‘혐의 없음’처분을 하였고, 1995년 7월(주임검사 장윤석)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처분을 하였다. 그런데 1995년 가을에 노태우의 뇌물수수의혹이 폭로되고, 12월에 특별법이 통과되어 다시 조사를 받으면서 이들은 처벌받게 된 것이다.    

 

이건리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월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80년 5.18 당시 육군 공군헬기인 500MD가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한 사실 등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장면. 뉴시스 ‘헬기사격’이나 ‘전투기출격대기 의혹’ 등도 이때 조사됐어야 했다. 그런데 1995년 7월 검찰은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은 무시하고 “헬기사격을 하지 않았다”“비무장으로 광주에 갔다”는 조종사들의 진술만 받아들여 사격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1996년부터 시작된 재판에서는 12·12사건에 대해서는 반란죄, 5·18 당시 5월 27일 도청재진입에 대해서는 내란목적살인죄로, 그밖에 엄청난 액수의 뇌물수수사건만을 다루면서 세부적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헬기사격’이나 ‘전투기출격대기 의혹’ 등은 수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전·노를 감옥에 처넣었으면 끝난 것 아니냐”며 일부 국민들이 식상해 하는 바람에  ‘헬기사격’이나 ‘전투기출격대기 의혹’ 등은 덮어져 버렸다.     

 

5·18에 대해서 1980년 이후 일관되게 제시된 해결책은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배상 △명예회복 △기념사업이었다. 이중 네 가지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규명’은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소홀히 취급되면서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진실규명’은 우리 역사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파헤쳐야 할 일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사안은 헬기사격, 전투기출격대기 의혹, 도청앞 집단발포 책임자, 암매장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5·18 20주년인 2000년 한국기자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5·18과 메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시위대가 제작한 유인물과 계엄군의 유인물을 비교 분석하고, 또 신문의 기사를 평가하였다. 그랬더니 군 유인물과 신문기사 보다 시위대의 유인물이 사실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언론으로선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그 후 이러한 부끄러움에 대해 얼마나 반성하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다 해 왔을까?  

 

더 걱정스러운 것은 후배 언론인들이 어떤 시각으로 5·18을 보고 있는지 하는 문제이다. 사법적으로는 이미 끝난 사건이다. 그러나 밝혀내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어 언론은 계속해서 이를 추적해야 한다고 본다. ‘진실규명’에 소홀히 하면 내란집단의 ‘부인’ 주장은 사실이 되어 퍼져나갈 것이고, 5·18의 왜곡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본질을 외면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그런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특조위가 국방부에 제안한 것 가운데 특별한 것은 군의 정훈교육시간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재교육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1980년 이후 내용을 조작하고 또 교육했던 군이 반성하는 뜻에서 스스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기자협회나 여러 언론단체에도 권하고 싶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꽃피게 한, 우리 언론인들에게 ‘글 쓰는 자유’를 가져오게 한 5·18민주화운동을 새로운 시각에서 공유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부탁한다. 또 앞으로 5·18특별법에 의해 구성될 조사위원회의 조사가 5·18조사의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언론이 적극 나서주었으면 하는 부탁도 드려본다.


성 전 국방부 5·18특조위 부위원장은 제31대 기자협회 부회장(광주일보 차장)을 역임했으며, 21회와 29회(‘5·18특파원리포트’ 출판) 한국기자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