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KBS 이사회는 차기 사장 후보를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 3인으로 압축했다. 세 후보자는 24일 시민들 앞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밝히고 정상화 방안 등 심사숙고한 정책을 발표한다. KBS 이사회는 26일 이들 3인에 대한 면접을 진행한 뒤 최종 후보자를 추천할 예정이다. 기자협회보는 세 후보자에게 KBS 미래 전략, 적폐 청산 작업 등을 물었다.
차기 사장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1985년 KBS PD로 입사해 <KBS 스페셜> <추적 60분> 등을 연출·제작하고 KBS 경영평가위원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 문건에 오르기도 했는데 국정원은 그를 두고 ‘정연주 추종자’라며 “무관용 원칙”으로 대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 역시 24일 예정된 정책발표회와 시민자문단 회의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상요 교수는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진솔하게 포부와 의지를 밝힐 생각”이라며 “모두 검증 당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아래는 이상요 교수와의 일문일답.
-KBS 차기 사장 후보 3인 중 한 명이 됐다. 3인에 뽑힐 거라고 예상했나.
쟁쟁한 후보들이 많아서 예상하지 못 했다.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예측이나 기대 이런 것들을 좀 자제하고 있었다.
-이번 사장 선임 과정엔 정책발표회와 시민자문단 회의 등이 있다. 여러모로 이전과는 다른 과정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시민자문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KBS는 전파가 주인의 것이고 국민이 주인이잖나. 당연히 사장도 국민이 직접 뽑아야 한다고 본다. 모두 검증 당할 생각이다.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런 의지와 포부를 가지고 있다 밝힐 생각이다.
-KBS 사장으로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4년에 정년퇴임을 했는데 이미 KBS 상황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정연주 사장 시절 기획팀장을 하며 바로 옆에서 정 사장이 부당한 압력과 힘에 의해 쫓겨나는 모습을 너무나 생생히 봤고 2008년 이후엔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정연주 추종자로 올라 무보직으로 7년간 전전긍긍해왔다. 그 7년 동안 KBS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충분히 봤다. 2016년 이후엔 교수를 하면서 KBS 평가위원으로 위촉돼 경영과 방송, 보도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는데 KBS를 보니 완전히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예를 들면 토론 프로그램을 하나 하려 해도 주제, 패널이 검열 당해 토론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방적 홍보 프로그램이 돼 버리는 식이었다.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고 보도 쪽을 봐도 자유로운 취재 보도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취재나 제작하는 사람들 내면에 자포자기가 있었다. 사장을 필두로 KBS 내부 조직 간부들이 전부 권력만 쳐다보고 눈치를 보고 알아서 입맛에 맞춰주고 있었다. 자본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엔 아직도 젊고 활력 있고 유능하고 도덕성이 충만한 그런 인재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인재들이 완전히 변방으로 밀려나고 줄 서기하는 사람들로 조직이 구성돼 있었다. 신뢰도 영향력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어느 순간엔 공영방송 무용론, 다시 말해 KBS가 없어도 된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KBS를 빨리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다가 현 사장에 응모했다.
-내부 구성원들 가운데선 방송 장악에 함께 맞서 싸우지 않았다며 반대 정서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내 나름대로 싸워왔다. 다만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정연주 사장 때는 1직급이었기 때문에 노조 조합원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총리였던 베를로스쿠니가 공영방송을 농락해 결과적으로 방송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취재해 프로그램으로 내보냈다. 142일 파업이 벌어졌을 땐 퇴직 이후라 참여할 수 없었다. 대신 꾸준히 칼럼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파업을 알렸다. KBS가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고 구성원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저항하고 있는가를 쭉 지켜봐왔다. 구성원들이 애를 쓰고 풍찬노숙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선 인정한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할 수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미력이나마 힘을 다 했다.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보나.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공영방송은 수신료 2500원을 받는다. 이재용에게도 시골 할아버지에게도 시장 생선 파는 아주머니에게도 전부 똑같은 2500원을 받는다. 굉장히 특별한 돈이다. 철학과 가치가 있다. 모든 대상, 우리 국민 모두를 똑같이 대하라는 가치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영방송이 제대로 못했다는 건 국민을 저버리고 권력과 자본의 편에 놀아났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그 쪽 편에 간 게 아니라 스스로 갖다 바쳤다. 그 결과 국민을 저버리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국민들을 착취하게 됐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역할과 정반대의 길을 간 거다.
-그 결과가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진 것 같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혁신이 시급하다. 인적 청산, 제도가 굉장히 통제돼 있다. 기자와 PD가 옴짝달싹 못하게 돼 있다. 이런 금언이 있다. 판사는 양심에 근거해서 판결로 말한다. 기자와 PD도 양심에 근거해 보도와 제작으로 말한다. 이 사람들이 양심을 지킬 수 있게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언련 같은 곳에서 발표된 여러 성명서나 토론 자료를 2000여건 봤다. 거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공통적으로 나와 있다. 그런 것들을 적시에 시행할 것이다. 그 다음에 KBS 내부에서도 기자, PD, 기술, 경영 등 각 파트별로 젊은 사람들이 KBS를 어떻게 혁신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내용도 보고 바람직하고 좋은 건 빨리 수용을 해야겠다. KBS를 인적 청산해서 젊으면서도 유능하고 도덕성 있는 사람들을 조직의 전면에 내세우고 억압과 통제의 기능을 했던 제도들도 전부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편성보도제작 관련 주요 국장들의 임명동의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임명일지 임면일지는 내부 구성원들하고 논의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겠다. 이 외에도 구성원들 마음속에 자포자기와 자기 검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개개인의 의식과 문화 속에서 확 사라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자율과 창의성, 역동성이 흘러넘치게 만들어줘야 할 거다. 억압과 통제, 이런 방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 자율성 창의성 도전 모험 이런 것들이 있어야 KBS가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다.
-KBS의 현재 신뢰도는 몇 점이라고 생각하나. KBS가 신뢰를 되찾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나.
0점에 가깝다. 그동안 북한 문제만 내세우고 그렇지 않았나. 북한 위험성을 너무 강조한다든가 한반도 평화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좌우 대립 관점에서 제시를 한다든가 지적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어젠다세팅 면에서 국민을 완전히 오도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고치기 위해선 아까 말했던 유능한 인재나 도덕적 인재를 내세우면 금방 해결된다. 또 과거에 <이산가족 찾습니다>란 프로그램처럼 국민적 어젠다를 제시하고 <차마고도>처럼 프로그램의 품격을 세계화시킨 프로그램 등도 빨리 제작을 해야 할 거다. KBS의 신뢰도는 변방에 있는 인재들이 전면으로 나오면 금방 회복된다.
-KBS 구성원들은 이병순 길환영 고대영에 이르는 지난 9년간 적폐 청산을 요구해왔다. KBS 내부에 어떤 적폐가 있다고 보나. 그 적폐를 어떻게 뿌리 뽑고 싶나.
공동조사위원회를 만들 생각이다. 각 파트별 태스크포스에서 만들어 논의된 내용들도 있을 테고 이미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나와 있기 때문에 실행력만 담보된다면 금방 된다고 본다. 다만 MBC보다 좀 더 심각한 KBS의 적폐라고 생각되어지는 건 내부 제도나 문화가 자율적이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혁신적이지 않다는 거다. 그런 문화로 바꾸는 것까지가 적폐 청산일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KBS 내부의 비정규직 문제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관련해 어떤 구체적 방안이 있는가. 있다면 설명해 달라.
이미 다 구상했다. 방송사엔 정규직보다 많은 무기계약직 계약직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파견직 자회사도급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있다. 실태는 거의 다 파악해놨고 고용형태별로 구체적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무기계약직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시킬 계획이고 기간제 계약직은 기간을 보장하고 계약만료가 될 때는 확실히 통보를 할 생각이다. 파견직은 직접 고용으로 변경해 파견업체에서 떼 가는 수수료를 임금으로 보전해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특수고용직, 프리랜서는 표준계약서를 작성할 것이다. KBS가 상생하는 조직이 되고 정의로워야 하지 않겠나.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금지돼야 하고 정의로운 일터가 돼야 한다.
-잔여 임기가 짧다. 약 8개월의 시간 동안 KBS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까.
8개월 안에 할 수 있는 것 먼저 할 생각이다. 시급한 건 공정성 신뢰도를 정상화시키는 거다. 비정규직 문제도 빨리 정상화시켜야 할 거다. 나머지는 중장기적 과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제를 잘 할 수 있도록 기반과 기초를 닦아야겠다. 8개월 만에 할 수 있는 것과 이후에 할 수밖에 없는 일을 구분해서 실행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