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아 기자 2018.01.24 14:34:42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아침 YTN 구성원들이 모여든다. 매일 오전 7시 서울 상암동 YTN 사옥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최남수 사장 출근저지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지난 19일과 22일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일찍 도착한 이들이 차가운 바닥에 휴대용 방석을 차례대로 깔았다. 동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오전 7시30분쯤엔 흰색 스티로폼 박스 3개가 배달됐다. 구성원들이 아침으로 먹을 주먹밥과 국이 담겨 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씨의 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투쟁했을 때도 이 주먹밥을 먹었다.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YTN 투쟁의 역사와 함께한 주먹밥”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출근저지 투쟁은 지난 8일부터 이어지고 있다. 최 사장은 일주일이 넘도록 정상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구성원 80~90여명이 매일 로비를 메우고 최 사장의 퇴진을 외친다. 한동오 기자는 “다들 일찍 나오면 피로가 쌓이고 구호 외치느라 목도 아프지만 저희끼리 더욱 공고해지는 기분”이라며 “더 나은 목소리를 내고 공정한 방송을 하는 데 지금 투쟁이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구성원들이 최 사장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공모, 사장추천위원회, 이사회라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최 사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올해 11년차인 김도원 기자는 “최 사장이 온다고 했을 때 환영하진 않았지만 절차를 밟고 온 사람이니까, 함께 YTN을 잘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사장의 행보는 구성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지난달 언론노조 중재로 맺었던 노사합의 파기가 결정적이었다. 김 기자는 “최 사장과 사측은 저희가 노종면 선배나 강성 지도부의 종용으로 출근저지 투쟁을 하는 것처럼 말한다”며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처음부터 노 선배와 같은 뜻이었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민석 기자도 “최 사장은 노사합의 파기, 말 바꾸기, 성희롱 트윗 같은 과거 행적 등으로 합법적인 이사회 결정까지 스스로 부정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이 투쟁에 나선 건 최 사장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지난 10년 YTN의 암흑기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2008년 당시 구본홍 사장에 반대하다 해직된 기자들이 지난해 복직했지만 아직도 YTN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염혜원 기자는 “기자로서 손발이 잘려있는 기분이었다”고 지난 시간을 설명했다.
2010년 입사한 김대근 기자는 “보도국 내부에서 불합리한 일들이 많았다”며 “민감한 이슈는 윗선에 보고 안 하고 몰래 취재하거나, 간부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한 기사를 다 뜯어고친 적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유병언에 집중해서 보도했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사회부장이 현재 최남수 옆에서 가장 열심인 류제웅 기획조정실장”이라며 “언론장악에 의한 부역보도에 힘써왔던 이들이 지금도 YTN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임 기자는 “그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최남수라는 인물이 등장한 것”이라며 “지난 9년간 YTN 보도를 망쳐온 사람들의 방패막이가 된 최남수가 저희와 싸우고 있는 게 사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조성호 기자도 “최 사장은 YTN 구성원들과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너무나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일부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그렇게 왜곡해서 볼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평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하는 사람인데도 최 사장의 주장대로 ‘일부 강성 노조원’이 돼버렸다”며 “최 사장이 먼저 저를 낙인 찍어버렸다.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조차 없는 사장과 어떻게 함께 가겠나”라고 힘줘 말했다.
구성원들은 최 사장이 사퇴할 때까지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오는 25일 하루 연차휴가를 내고 업무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상엽 기자는 “저쪽은 최 사장이 사장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걸 내세우는 게 아니라 노조와 구성원들을 공격하면서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명분 대 명분 싸움이다. 저희가 물러서면 스스로의 명분도 무너진다. 그 명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