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영 기자 2017.11.28 22:23:58
지난 23일 서울 목동 SBS 사옥 로비엔 ‘우리의 투표, SBS를 바꿉니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바로 옆 키오스크엔 대표이사 사장, 보도·시사교양·편성 최고 책임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명동의 투표기간이 공지돼 있었다. 역사적인 첫 임명동의제 절차가 시작된 SBS에 차분하면서도 뜨거운 투표 열기가 흐르고 있었다.
SBS는 지난 21일부터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임명동의제는 사장 및 시사교양과 편성 최고 책임자의 경우 재적 60%가 반대할 때, 보도 최고 책임자의 경우 재적 50%가 반대할 때 임명을 철회하는 제도다. 재적인원 970여명인 SBS에선 590명 가량이 반대표를 던지면 부적격 인사의 임명이 저지된다.
SBS는 임명동의제 시행 첫 사장 후보로 박정훈 현 사장을 다시 내세웠다. SBS A&T 사장 후보로는 이동협 미술본부장을, 보도본부장 후보로는 심석태 뉴미디어국장을 지명했다. 28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임명동의 투표는 오는 30일까지 사흘간 전자투표 방식으로 진행된다. 12월1일엔 이를 바탕으로 인사 발표가 난다. 만약 부적합 판정이 나오게 되면 회사는 다른 후보를 선정해 1주일 이내에 임명동의 투표를 재실시한다.
SBS가 진행하고 있는 임명동의제는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다. 대주주와 정치권력의 간섭으로부터 방송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해 SBS 노조가 지난 8월 말 ‘방송 사유화 진상 조사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투쟁한 결과물이다. 윤창현 SBS 노조위원장은 “방송을 망칠 의도를 가진 사람이 사장 자리에 있으면 아무리 공정방송위원회나 보도편성위원회같은 좋은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다 무력화된다”며 “가장 좋은 사전 조치는 그런 사람을 애초에 뽑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명동의제는 사장 선임 과정에 구성원들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어장치를 확보한 것이기에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SBS를 필두로 방송사 사장 선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주주가 일방 임명하거나 권력이 사실상 낙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의 동의를 묻거나 선임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지난 16일 정기이사회를 열고 후보자 면접 생중계와 시청자 질문 참여 등 새로운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독립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위해서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 임시이사회를 거친 3명의 후보자는 12월1일 MBC 상암동 스튜디오 공개홀에서 각자 20분씩 정책설명회(공개 프리젠테이션)를 가진다. 이 자리에는 일반 시민 100명과 MBC 구성원 70명이 선착순 신청을 통해 방청객으로 참여한다.
시청자들은 다음달 1일부터 5일까지 MBC 홈페이지를 통해 후보자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방문진은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질의된 내용을 선정해 7일 열리는 최종 면접에서 후보자들에게 묻는다. 구성원들 역시 MBC 로비에 사장 후보자에게 던질 질문을 적기 시작했다. MBC 노조는 여기서 취합한 구성원들의 질문을 방문진에 전달해 최종 면접에 반영할 계획이다.
김연국 MBC 노조위원장은 “기존의 방문진 이사회는 사실상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을 물밑으로 받아왔고 시청자나 종사자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방식은 진일보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이런 절차들이 방문진 이사회 차원이 아니라 좀 더 확고하게 법과 제도로서 확립되고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SBS와 MBC 두 방송사가 사장 선출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대부분 방송사의 사장 선임 절차는 투명하지 못하다. 새 사장이 내정됐지만 갈등 국면에 있는 YTN이 대표적이다. YTN에선 지난 6월 사장 공모에서 대주주 측 사장추천위원이 당시 해직 상태였던 노종면 기자에 모두 최하점을 주며 서류에서 떨어뜨리고 최근 구성원들이 반대하는 최남수 전 머니투데이 대표이사가 신임 사장으로 내정되는 등 ‘깜깜이 선출’이 도마에 올랐다.
박진수 YTN 노조위원장은 “정권 교체 전에 사장 선임 절차 제도 개선을 회사에 요구했고 그 일환으로 사장추천위원회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박근혜 정부 때 선임된 이사들로 인해 결국 사추위는 유명무실한 시스템으로 전락했다”며 “이사의 할당 몫이나 사추위원의 공평한 배분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