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기자 2017.11.15 13:07:31
김장겸 MBC 사장의 해임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들이 있다. 길게는 2081일째, 짧게는 1974일째 해직 생활을 하고 있는 MBC 해직언론인 6명(강지웅·박성제·박성호·이용마·정영하·최승호)이다.
최승호 해직PD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정리 집회에서 “기나긴 싸움이었다. 많이 다치고 상처가 남았지만 끝내 우리가 이겼다”며 “이용마 기자가 쓴 책 내용처럼 ‘올바른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할 때’가 드디어 왔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방송문화진흥회가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의결한 순간 서울 여의도 방문진 앞에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MBC 구성원들은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나눴다. 2000여명의 MBC 구성원이 파업에 들어간 지 71일 만이었다.
지난 2월 취임한 김 사장은 MBC 구성원들의 사퇴 요구에 부딪히며 결국 사장 자리에서 퇴출됐다. 방문진은 이날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김 사장을 해임했다. 여권 추천 이사인 이완기 이사장을 비롯해 김경환·유기철·이진순·최강욱 이사가 찬성했다. 야권 추천인 김광동 이사는 기권했고, 고영주·권혁철·이인철 이사는 불참했다.
해임안이 통과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장겸 감싸기’를 해온 야권 이사들이 해외 출장을 이유로 지난 8일과 10일 열린 이사회에 불참한데다, 김 사장 또한 소명 절차를 서면으로 대체하고 출석하지 않으며 표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결국 13일에야 해임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다.
방문진 여권 이사 5인은 지난 1일 김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방문진에 제출했다. △방송의 공정성·공익성 훼손 △부당전보·징계 등 부당노동행위 실행 △파업 장기화 과정에서 조직 관리 능력 상실 등 7가지 해임 사유를 들었다. 김 사장은 그간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보도국장-보도본부장을 이어오며 지금의 사장이 되기까지 정부 비판 아이템을 은폐하고,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을 부당전보·징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김 사장은 지난 2011년 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정치부장으로 재직하며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검증 보도를 누락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과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관련해 은폐를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보도국장 시절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사건을 축소 보도하고, 지난 2015년 2월 보도본부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누락,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병역 의혹에 대해서는 왜곡 보도를 지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여론을 떠들썩하게 달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MBC 뉴스에서는 한 달 동안 ‘최순실’ 이름이 다뤄지지 않았는데, 이 또한 김장겸 당시 보도본부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MBC 사장이 해임된 건 1988년 방문진이 설립된 이후 2013년 김재철 사장에 이어 두 번째다. 김 사장은 이사회 의결 직후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이 정말 집요하고 악착스럽다는 점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노영방송으로 되돌아갈 MBC가 국민의 공영방송이 아닌 현 정권의 부역자 방송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김 사장의 퇴출이 이뤄지며 MBC 구성원들은 15일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한다. 다만 시사·보도·아나운서부문은 제작거부를 이어간다. 대전MBC 노조는 이진숙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파업을 유지하기로 했다.
새 사장 선임도 조속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완기 방문진 이사장은 “새 사장 공모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면서도 “조속히 MBC가 정상화돼야 하는 만큼 적어도 한 달 내에는 진행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전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성명을 통해 “김장겸의 해임은 지난 9년 MBC를 장악한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의한 집권 세력과 결탁해 잇속을 챙긴 백종문 등 부역 경영진과 간부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부역의 잔당들은 이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언론장악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MBC의 비전을 선포하기 위한 투쟁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초심을 잊지 않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공영방송의 반석 위에 MBC를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