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맑은 토요일 대학로는 교회선교단의 노랫소리, 월드컵 맞이 축하쇼, 떼를 지어 다니는 젊은이들로 왁자지껄했다.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도 양차선 모두 꽉꽉 막혀 있었다. 북적거리는 공원 건너편 골목길을 따라 비탈진 길을 올라가자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이 후원하는 ‘제일생명의 집’이 보였다.
박창섭 한겨레 집중기획부 기자는 안양에서 대학로까지 먼걸음을 했다. 오늘은 아내와 세 살 난 아들도 함께 왔다. ‘제일생명의 집’에서 만난 다섯 살 왕뢰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 있었다. 조선족인 어머니와 한국말을 못하는 아버지는 박 기자 가족을 반갑게 맞이했다. 피붙이 하나 없는 한국에 그들이 온 것은 순전히 박 기자와의 인연 때문이다. 지난 2월 2일 출장차 중국에 간 박 기자는 심양에서 연길로 가는 밤기차 안에서 그들을 만났다. 13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여행에 말동무를 할 겸 맞은편 침대에 앉은 왕뢰 가족에게 말을 붙였다.
“처음에는 중국인인줄 알았는데 아이 엄마가 한국말을 하더라고요. 조선족이구나 생각했죠. 남자아이가 너무 귀여웠어요. 중국말로 노래를 하는데 참 잘 하더라고요. 그러다 모자를 벗는데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어요. 순간 드는 생각이 백혈병이구나 싶었죠.”
백혈병은 2001년 6월에 발병했다. 치료를 위해 천진, 북경 등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중국 돈으로 집 세 채 값을 병원비로 썼다. 아이 아빠가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병은 호전되지도 않았고, 완치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같이 아이 키우는 부모 심정으로 그들에게 백혈병을 치료할 길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한국에 오면 중국보다는 의료기술이 발달돼 있고, 골수은행을 통하면 골수이식 수술도 가능하잖아요. 사랑의 리퀘스트에 나가는 등 병원비도 마련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연락처와 진료차트를 받아왔어요.”
귀국 뒤 곧장 아산병원 김태형 박사에게 진료차트를 보였다. 급성이었고, 악성이었지만 골수이식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선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데 조선족의 불법 체류 문제 때문에 비자를 발급받는 데도 손이 많이 갔다. 박 기자와 김 박사가 초청장을 보내고 그쪽 영사관에 직접 전화를 해 양해를 구했다.입국은 4월초 이루어졌다. 아산병원에서 한 달여간 입원해 골수이식 수술을 위한 항암 치료를 받고, 지난 22일 퇴원해 ‘제일생명의 집’에 잠깐 머무르고 있다. 그동안 박 기자는 병원 주선에서 거처 마련, 일주일에 서너 번 방문까지 했다. 여간 성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9일) 미국 출장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골수를 찾지 못했어요. 그냥 중국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다행히도 출장 동안에 대만골수은행을 통해 골수를 찾았더군요. (21일) 귀국 후 제일 기쁜 소식이었어요.”
이제는 골수기증 절차를 밟고 8월에 골수이식 수술을 하면 된다. 수술을 위해선 앞으로 항암 치료를 두 번 더 받아야 한다. 항암 치료후 한달 내에 수술을 받아야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 병원비다. 당초 병원에서는 5000만원∼1억원 가량을 예상했지만 지난 4월에 받은 항암 치료에만 3300만원이 들었다. 박 기자가 알음알음 인맥을 동원한 덕분에 MBC 생방송 화제집중, 우리시대 등에 사연이 소개되고, MSN 홈페이지에 왕뢰돕기 코너가 생기면서 돈이 모이고 있지만 1억원이 넘는 병원비를 대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골수도 찾았는데 돈 없어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겠죠.”
지난 토요일 박 기자가 ‘제일 생명의 집’으로 간 것도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리는 수퍼모델 친목모임 주최 백혈병 어린이 돕기 후원행사에 함께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연변말씨를 쓰는 왕뢰 어머니는 많이 수줍어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냥 스쳐갈 수도 있었던 인연이 ‘희망’을 만들어줬으니 지난 겨울 만남은 얼마나 소중할까.(후원금 우체국 104885-02-090671, 왕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