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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담은 파업소식 디지털로 배달합니다

공영방송 존재 이유 알리려
영상콘텐츠 제작해 SNS 유통
"응원 댓글에 힘들지 않아"

김달아 기자  2017.10.25 15: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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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파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두 달 전 총파업에 돌입한 KBS·MBC 구성원들은 의문이 들었다. 지난 9년간 무너지는 공영방송 속에서 시청자의 외면까지 지켜봐온 터였다. 공정방송을 하겠다, 안에서 이 싸움을 멈춘 적 없다,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해야 했다.


TV를 통해 할 수 없었던 얘기를 KBS 새노조 페이스북과 MBC 마봉춘세탁소 페이지에서 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KBS·MBC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왜 파업하는지를 영상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작 전담 인력은 KBS 10명(비상주 포함 30명), MBC 12명이다. KBS기자협회도 팀(8명)을 꾸려 별도 콘텐츠를 선보였다.



지난 19~20일 만난 각사 파업 콘텐츠 담당 임종윤·최승현 KBS PD, 김민욱·박소희 MBC 기자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획, 연출, 제작하느라 자발적 야근이 일상이 됐다. 50일 넘도록 이런 생활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에게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박소희 기자는 “마봉춘세탁소를 연 이후 쉰 날이 거의 없지만 오히려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느낌이다. 가만히 있을 때가 더 힘들었다”며 “차가웠던 댓글이 응원으로 바뀌는 걸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파업 콘텐츠로 말하려는 것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다.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하는 것이다. 경영진과 이사진의 비리, 부당노동행위를 폭로하는 한편 언론인으로서 반성과 각오도 콘텐츠에 담았다. 김민욱 기자는 “처음엔 유머 코드로 관심을 끌었다. 어느정도 인지도를 쌓은 이후에는 이 싸움을 진지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목적은 파업 동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전담팀이 만든 영상은 SNS뿐 아니라 매일 열리는 집회나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도 조합원들과 만난다. 최승현 PD는 “분노, 감동, 재미, 추억, 폭소 등 영상마다 목적이 다르지만 결국 조합원들이 다음날 집회에 또 나올 수 있는 힘이 되고 싶다”며 “파업 집회가 지루하고 힘들 수도 있는데, 이 영상들이 동료들을 지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업을 기획하는 조합원들의 일상을 다루거나 바로 옆 동료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콘텐츠도 같은 맥락이다. KBS를 향한 명사들의 쓴소리를 모아 영상으로 제작한 정다원 KBS 기자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관심도도 떨어지고 우리만의 투쟁으로만 남게 되는 것 같아 기획했다”며 “신랄한 비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약하고 무기력했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다양한 직군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있다. 박소희 기자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 동료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동안 다른 자리에 있었지만 모두 같은 감정, 분노를 참고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임종윤 PD는 “파업 콘텐츠 제작에는 회사 장비를 쓸 수 없는데 영상제작국 촬영감독님들이 사비로 카메라를 렌탈해 와 찍어주신다”며 “일에 보태라고, 밥 먹고 하라고 큰돈을 쥐어주시는 선배들도 있다. 모두 감사하다”고 전했다.


지금 이들이 힘을 내는 이유는 파업을 끝내고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꼼꼼하게 기록하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도 안고 있다. 임종윤 PD는 “방송에서는 해보지 못한 기술을 파업 영상에 적용하고 있다”며 “기세 좋게 승리해서 돌아가겠다. 이런 경험이 과오를 청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에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2017년 이들이 땀 흘려 만든 콘텐츠는 언론투쟁의 역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최승현 PD는 “20~30년이 지나 간부가 됐을 때 지금 만든 영상을 보면서 ‘방송독립을 위해 이렇게 노력했었지’라는 걸 다시 상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5년 전 MBC 170일 파업 당시 ‘제대로 뉴스데스크’라는 파업뉴스에 참여했던 김민욱 기자는 마봉춘세탁소는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길 바랐다. 김 기자는 “지난 5년간 명예훼손 형사고소를 당했고 유배지를 떠돌아야 했다. 지금도 그 영상을 잘 못 보겠다. 아직도 MBC가 정상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마봉춘세탁소는 시간이 흘러도 기쁜 마음으로 돌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